이효진
(골목탐험대 ‘누리봄’ 대장)

나는 길을 걷기를 좋아한다. 매일 아침 걷는다. 춘천에는 특히 호수를 끼고 걷는 길이 일품이다. 산길도 좋아하지만 십 리 밖까지 멀리 보이는 호수길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길을 걸으면서 나는 머릿속에 메타세쿼이아 펼쳐진 담양의 아스팔트 길보다 더 멋있는 그림을 그리면서 춘천 의암호 둘레길을 몇 년에 걸쳐 걷고 있다. 호수를 따라 설치된 데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의암호 스카이워크를 만나고 그 앞으로 그림같이 펼쳐진 삼악산을 마주하게 된다. 잡념을 지울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서양에서는 길이 ‘이동’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Vahana’와 라틴어의 ‘Vehiculum’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어의 ‘road’는 라틴어의 ‘rad(말 타고 여행하다)’에서, ‘path’는 ‘pad(발로 다져진 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예전의 길은 이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막힘이 없는 장소가 바로 길이었다. 이러한 본래 의미의 길에 더해 요즘은 레저와 건강의 길로 다시 바뀌고 있다.

그런데 춘천시는 수년 전부터 12월~3월까지 김유정 문인비부터 중도선착장까지 통행 제한을 하고 있다. 시청에서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다며 통행 제한 차단문까지 설치했다. 하지만 의암댐에서 서면의 애니메이션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국토부 소관이라서 그런지 통행 제한 차단문을 설치하지 않았다. 같은 의암호 둘레길을 두고 국토부는 통행 제한 차단문을 설치하지 않았는데 춘천시 관리부분만 왜 설치했는지 의문이 든다. 

춘천시는 길을 관리하는 방법으로 가장 손쉬운 대안을 선택한 것 같다. 인근 홍천만 해도 길에 고무판을 깔아서 겨울철 미끄럼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길을 개방하고 있다. 물론 미끄럼 방지시설에는 비용이 발생하고 인력을 동원하여 수시로 관리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매년 반복되는 도로포장과 보도블록 교체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면 춘천호수길 관리예산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춘천시 관광과는 가을에 호수길, 봄내 길에 다량의 현수막을 부착했다. “걷기, 여행이 되다 다채로운 가을 봄내길” 지금 막힌 길을 바라보며 되새겨보는 이 문구는 단순히 구호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대에 시민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남녀노소가 갈 곳이라곤 호수길과 공원밖에 없다. 사람들의 발과 발이 묻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춘천의 호수길이 춘천시의 행정편의주의로 막힌 데 대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봄내길 울타리에는 아직도 “행복도 자전거도 멈추지 마세요” “당신의 꿈도 달리고 있습니까”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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