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논평] 새해 덕담, 농(農)에 더 가까이
[이슈논평] 새해 덕담, 농(農)에 더 가까이
  • 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이사)
  • 승인 2021.01.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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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이사)

신축년 새해다.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날 같은데 자고 나니 새해라니, 구분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가볍게 볼 일만은 아닌 것이, 새해는 지구 공전주기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시속 11만km의 속도로 무사히 한 바퀴 돌았으니, 나름 우주적으로는 뜻깊은 사태다. 춘천시민으로서 나의 일상은 그게 그거라 하더라도, 지구인으로서는 기념하기 충분하다.

농업농촌을 상기시키는 글을 《춘천사람들》에 쓴 시간이 30개월쯤 되었다. 서로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고 싶어서였다. 우리 모두는, 도시민으로서는 농촌과, 소비자로서는 농업과 멀어졌다. 이 멀어짐에도 지구 공전과 같은 자연법칙이 작용할 수 있을까? 농업농촌과 멀어졌더라도 다시 한 바퀴 돌아서 가까워지게 될까? 흙으로 빚어졌다는 인간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분명한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농(農)과 다시 가까워지는 문제는 불분명한 사회경제적 영역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農과 다시 가까워질 필요가 있는가?” 이상한 질문이겠지만 의미가 있다. 오답이더라도 답을 내기 위해서는, 잠깐이라도 農을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農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과 이해의 오류를 점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질문으로 바꿔볼 수도 있다. “農과 다시 가까워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 

다시 생각하고 점검하고 다시 가까워져야 한다. 農은 곧 식(食)이기 때문이다. 農은 먹거리(食) 문명 양식이다. 인류 문명은 農에 기초하여 여기까지 왔다. 호모 사피엔스는 農이라는 문명을 통해, 더 많이 먹고 먹일 수 있었다. 문명 발전이 農에서 비롯되었고 農으로 가능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물론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비정한 문명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무튼, 農을 생각함은 우리 식구들의 食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글로벌 먹거리 시스템은 불합리하고 불안정하지만, 먹거리 전달체계는 나날이 발전해서 우리를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강원도 옥수수는 겨우 한철인데, 에콰도르 바나나와 뉴질랜드 키위는 매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다섯 번만 터치하면 먹거리가 배달되니 말이다. 그러나 편리함에 도취한 와중에도 가끔 불안하게 마련이다. 기후위기니 코로나19니 어째 심상치 않다. 먹거리 풍요는 계속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불안하다면, 앞의 질문을 곱씹어보자. “農과 다시 가까워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 먹거리는 農에 기반을 둔다. 그런데 우리는 남미나 중국의 農에 기반한 먹거리 풍요를 누리는 중이다. 그렇다면 정작 대한민국의 農, 강원도의 農, 춘천의 農은 안녕한가? 만약 우리의 農이 진정으로 안녕하지 못하다면, 우리의 먹거리 풍요와 안녕이 괜찮겠는가? 앞으로 닥쳐올 불이익과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각오는 하고 있는가? 

農과 다시 가까워진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다. 내버려 두지 말라는 뜻, 잘 굴러갈 거라고 낙관하지 말라는 뜻이다. 農의 미래와 지속 가능함을 확보하라는 뜻이다. 무엇이 이익인지를 따져보라는 뜻이다. 農과 다시 가까워진다는 것은, 절대적 이익에 부합하는, 최고의 공익이라고 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일이다. 

비관적이다. 춘천 도심 바깥의 논밭을 투자가치로만 따진다면, 우리는 農과 가까워질 수 없다. 농민이 더 부자라면서 도대체 몇 명의 농민이 남아있어서 간신히 농사짓는지는 관심 없다면, 우리는 農과 가까워질 수 없다. 인도산 메밀 막국수와 호주산 곰탕에 무심히 길들여진다면, 우리는 農과 가까워질 수 없다. 비관적인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준,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결코 안전하고 영원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우리는 農과 가까워질 수 있다. 온갖 어려움 끝에 춘천지역먹거리통합지원센터 등을 통해서 농민과 시민이 단단히 결합해가고 있으니, 우리 춘천은 農과 가까워질 수 있다. 더 지역적으로 더 협동적으로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생활협동조합을 일궈가고 있으니, 우리 춘천시민들은 農과 가까워질 수 있다. 희망의 사례는 없는 듯 보여도 분명히 있다.

새해다. 작년 길었던 장마도 이겨냈듯이, 農은 올해도 자연법칙에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農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農의 미래까지 확보하는 일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적 선택으로만 가능하다. 부족했던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복을 빌어 드린다. 춘천사람 모두가 궁극의 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선택을 하길 바란다. 農과 가까워지는 새해가 되길 빈다. 모두 복 받으시라고 드리는 덕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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