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영 (시인)

‘라온제나’라는 단어가 있다. ‘즐거운 나’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옛 문헌에 ‘라온’이 ‘즐거운’이라는 뜻으로 쓰였고, ‘제나’가 ‘자기 자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나온다. 그래서 ‘라온제나’가 ‘즐거운 나’라는 순우리말이라고 한다는데,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아무튼 내가 이 ‘라온제나’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권정일 시인의 《양들의 저녁이 왔다》(세계사, 2013)라는 시집에 실린 <배웃음>이라는 시에서였다. 다소 길지만 읽어보자. “구름을 타고 내려온 선녀들이 비파를 뜯으며 놀았다는 구천동 비파담 소(沼)에 / 어린 물고기들 배를 뒤집으며 논다 /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속은 웃음꽃밭 // 꽃 핀다, 꼬물꼬물 조물조물 둥긂둥긂 소소소 // 작은 몸을 꼬리로 뒤집어 / 배로 웃는다 // 알고 있니, 지금이 라온제나라는 거 // 햇살의 음역을 가진 물비늘 웃음들 / 웃지 않는 것과 웃는 것과 어느 쪽이 몽상하기 좋을까 / 침엽 같은 내 뺨을 꾹 찌르는 지느러미 같은 바람이 / 차가운 웃음을 훔치고 지나간다 // 어린, 저 어린 성숙하려고 연신 단단한 물의 심장을 뒤집는 저 여린, / 자잘한 마음에도 쉬이 금이 가는 난 / 누구의 웃음을 잘라 하염없음의 꽃대로 있을지 // 저 웃음 / 훔치고 싶다”(권정일, <배웃음> 전문)

“배웃음”이란다. 어린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으며” 노는 것이, “작은 몸을 꼬리로 뒤집어 배로 웃는” 것이 바로 배웃음이란다. 그렇게 지금 계곡물 속에 어린 물고기들의 웃음꽃이 만발했단다. “물속은 지금 웃음꽃밭”이란다. “꼬물꼬물 조물조물 둥긂둥긂 소소소” 웃음소리, 꽃피는 소리를 들어보란다. 하지만 나는, 당신은,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고 늙어버린 우리는, 어린 물고기와 달라, “자잘한 마음에도 쉬이 금이 가”기 십상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시인은 저 어린 물고기들의 웃음을 “훔치고 싶다” 말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어른이 되어버렸으니. 세상은 전대미문의 재앙과 역병이 창궐하였으니. 어린 물고기들을 들여다볼 여유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포기하였으니. 세상은 이미 울음 천지인 것이니. 한가롭게 배웃음 따위에 눈길을 주기에는 우리 삶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일소일소(一笑一少)라는 말 따위,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 따위에 더는 속지 않겠다며 우리는 오늘도 비장하게 칼을 간다. 네가 죽어도 나는 살아남아야겠다는 마스크 속의 저 비장하고 일그러진 표정들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이런 마당에 나는 왜 권정일의 시 <배웃음>을 떠올리는 건가. ‘즐거운 나’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라는 ‘라온제나’를 굳이 끄집어내는가. 일소일소라는 말 따위가 주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웃음이 어쩌면 백신보다 더 큰 백신일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어느 겨울, 파리의 한 공원에서 눈먼 거지가 “눈이 안 보입니다. 한 푼만 주세요.”라는 팻말을 걸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모자는 텅텅 비어 있었다. 그때 누군가 그 곁을 지나가다가 그 팻말의 문구를 바꾸어주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눈먼 거지의 모자에 돈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바뀐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곧 봄이 오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 봄을 볼 수 없답니다.” 문구를 바꾸어준 사람은 누굴까. 그는 바로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유명한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다. 시적인 문장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병든 마음을 치료해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다. 네 탓이다. 네 탓이다. 의심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힘내자 힘내자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자. 라온제나! 라온제나! 나 언제나 즐거워라!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들려주자. 무료 백신이니 손해 볼 일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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