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 개인전 31일까지…카페 ‘느린시간’

먼저 작품사진을 보기 바란다. 사진으로 보이는가? 그림으로 보이는가? 

그림이다. 이희용 화가가 종이에 연필과 지우개로 그려낸 도자기이다. 사진보다 더 실제 같은 도자기들은 국보급 청자·백자부터 일상의 생활자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그리는 정성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

이희용 〈정물〉 

창호지를 3겹 합하고 그 위에 돌가루와 젯소(분필·석고·안료·아교 등이 혼합된 액체)를 바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 바탕에 굵은 연필 선을 빼곡하게 칠한다. 그려질 도자기 윤곽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다음에는 스펀지로 연필 선을 문질러 종이바탕을 온통 검게 만든다. 그때부터 흑연을 스펀지로 끌어다 비비거나 면봉·붓·찰필 등을 이용해 도자기를 그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흑연이 잘 스며들도록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말리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한다. 이런 과정을 7~30여회 반복하며 작품을 완성한다.

감탄을 불러내는 그림만큼이나 도자기를 에워싼 검은 바탕이 인상적이다. 고요하고 어두운 우주를 연상시킨다. 덕분에 빛을 얻은 도자기들은 시간을 온전히 드러내며 아우라를 얻고 어둠 또한 가치를 얻는다. 그의 작품에는 시간·우주·빛·어둠 등 철학과 예술의 화두가 짙게 배어있다.

“어휴. 큰 의미두지 마시라.(웃음) 그저 2010년 무렵 자연스레 도자기가 눈에 들어왔고, 그려야겠다는 생각에 연필을 들었을 뿐이다. 이래저래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금의 화풍이 자리 잡혔다. 아는 것도 많지 않고 특별히 쌓아두어 정리한 생각도 없다.”

대룡산 가까이 자리한 작업실에서 늘 자연을 보며 사는 탓일까? 애써 의미를 부여하거나 포장해서 돋보이길 꺼린다. “극사실주의로 그려내는 건 사람들 생각과 달리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냥 똑같이 그리면 된다.(웃음) 어렵고 복잡한 생각하는 거 싫어서 이런 작업이 그냥 좋다. 언젠가 또 자연스레 다른 대상이 눈에 들어오면 그냥 또 그리면 된다.”

이희용 작가의 〈정물〉 연작들

미소로 말을 대신하는 화가에게 재차 물었다. 실제 도자기를 빚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대상이 있는지. 그리고 동서고금 좋아하는 화가가 누군지. 한참 동안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연필 깎은 부스러기가 잔뜩 쌓여있다. 언젠가 도자기 모양 석고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연필부스러기를 넣고 투명 에폭시로 입체적인 자기를 만들어 볼까 싶다. 그리고 불상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는 없다. 그런데 정선·김홍도·신윤복 중 누굴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힘 들어가지 않은 신윤복의 그림을 좋아한다.”

춘천에서 나고 자라 화업을 이어온 화가는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서 그림만 그리겠다 말한다. 바르게 앉아 소박하게 웃는 화가의 모습이 벽에 걸린 그의 작품을 똑같이 닮아 있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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