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산책] 사랑하는 아들 미안, 그래도 엄마는 최선이었다
[마음산책] 사랑하는 아들 미안, 그래도 엄마는 최선이었다
  • 이승옥 (인문 상담사)
  • 승인 2021.01.11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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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옥 (인문 상담사)

2020년 10월 말 15년 동안 불안장애, 우울증에 대해 치료를 반복했던 나의 아들이 자폐 장애 진단서를 받았다. 15년 동안 그 진단이 나올까 봐 두려웠다. 사실 나는 미리 알고 있었다. 15년이 지나 고2가 되던 해 아들은 더는 하루도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아들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거의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은 항상 혼자 있고, 다른 아이들은 모여 있다고 표현했다. 하루도 더는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나의 욕심으로 학교에서 오랜 시간 동안 홀로 있게 한 것 같아 처절하게 슬펐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자신의 이 상황을 이야기해준 것이다. 아들은 3년 전에는 내가 슬픈 표정을 지어도, 바로 내 앞에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2년 전에는 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면 나를 쳐다보며 “엄마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1년 전에는 나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진단서를 받기 한 달 전쯤, 중학교에 수업하러 갔다, 점심시간이 되어 학교 상담실 위(Wee) 클래스에서 샌드위치를 먹게 되었다. 담당 선생님이 자리를 비웠었는데, 그때 한 여학생이 위 클래스로 들어왔다. 점심시간인데 밥을 안 먹으러 가냐고 물었더니 점심시간에 위 클래스에 와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나는 샌드위치를 권했다. 여학생은 샌드위치를 조용히 먹고, 다시 교실로 갔다. 나중에 위 클래스 선생님께 어떤 친구인지 여쭤봤더니, 특수반친구인데 같이 점심 먹으러 갈 친구가 없어 자주 위 클래스에 온다고 하셨다. 내 눈에는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었다. 

아들의 진단서를 받고 난 후 그 여학생이 떠올랐다. 얼마 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근무하는 직장에서 근무한 경험도 함께 생각났다. 그곳의 한 선생님께서 “만약 00 님의 장애 내용을 몰랐다면, 나는 동료라도 그 사람과 잘 지내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분과 근무하다 화가 나는 지점이 있을 때, 그분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장애로 인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다음날이 되면, 다시 웃으며 진심으로 잘 지낼 수 있어요”라고 한 말을 들었다. 이런 경험이 특수반지원신청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아들이 학교생활을 할 때 많은 오해 상황으로 자주 울었다. 아들은 전체적 맥락 안에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거실에서 나와 딸이 대화 도중 내가 딸에게 “네가 그랬잖아”라고 이야기하면 방 안에 있는 아들이 뛰어나와 “제가 언제 그랬어요!!”라고 한다. 그 부분을 너에게 한 말이 아니라고 몇 번을 설명해줘도 분위기와 맥락 안에서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여러 소통체계의 다름으로 인해 아들은 “왜 오해를 하냐. 못 알아듣는 척한다.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아들이 자폐라는 설명서를 달고 사회에 나가도록 결정했다. 나의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내가 아들을 키우면서 가장 비참했던 순간이 다름에 대해 비난하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을 때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의 지인이 학부모장애어머니모임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10명 중 8명이 우울증약을 먹고 있었다고 했다. 장애아의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힘을 내서 장애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이번 일로 내가 슬퍼할 때 지인께서 “아들이 장애 진단서를 받았다고 아들의 존재 자체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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