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환(춘천시농업인단체협의회 회장)

소를 기르는 농가로써 신년을 소해로 맞이하는 마음이 새롭다. 예부터 농민들에게 소는 재산 1호였다. 농사를 짓는데 필수요건인 3농(농민, 농지, 농우) 중 하나이지만 모든 이에게 진한 감동을 준 ‘워낭소리’ 다큐멘터리에서도 보았듯이 농민에게 소는 가축 이상이다. 소는 온순하면서도 용맹스럽고 우직하면서도 힘이 좋아 농민들이 해야 할 많은 일을 도맡아 했다. 논 갈기, 밭 갈기는 물론 짐을 나르는 이동 수단의 역할까지도 참으로 귀한 존재였다.

소해를 맞이해서 농민들은 다시 소처럼 근면하고 우직한 한 해를 보내겠다 다짐해 보지만, 연말·연초를 보내는 마음은 편하지 않다. 한 해 얼마를 벌어 얼마를 쓰고 얼마가 남았는지 알기 위해 기업이나 개인이 흔히들 만드는 결산서를 작성해보면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든다. 옛날부터 못 믿을 거짓말 중 하나가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라고 하지만 농사에서는 이 속담이 통하지 않는다. 매년 농사를 지어 팔고, 사고, 쓰고 나면 주머니 속은 먼지밖에 남지 않는다. 

필자도 지난 한 해 지은 농사를 30년 만에 처음으로 결산서를 만들어 보았다. 소를 전업으로 기르는 농가이다 보니 중·소농가와 달리 판매금액이나 생산비가 많지만, 경영수지는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생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넘어서다. 여기에는 자가노동비를 포함되지 않는데도 그렇다. 1년 매출액이 2억1천만 원, 밑소 구입비가 8천만 원, 사료비가 8천만 원이다. 여기에 톱밥, 치료비, 자재비, 각종 장비 수리비, 금융이자가 2천만 원이다. 계산하고 나니 3천만 원이 가구 농업소득이다. 두 명이 농사를 짓고 있으니 한 명당 1천5백만 원으로 노동자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전업농 규모의 농가가 일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대가가 이 정도이니 중·소농들의 농가소득은 더 형편이 없을 거다. 이러니 1년 농사를 짓고 나서 결산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서 앵무새처럼 떠드는 1억 이상 농가소득으로 선진농업 실현하고 있다는 말을 농민들이 딴 나랏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결산을 해보면 ‘빛 좋은 개살구’이기 때문이다.

새해 계획도 마찬가지이다. 강원도는 올해 농정 목표의 하나로 ‘스마트농업실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구호를 걸었다. 내용을 보면 이제 농업도 재래식 농업이 아닌 빅데이터, 인공지능을 이용한 첨단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하는 것 같다. 이유는 고령화되어 가는 농촌·농업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젊은 농민을 유입해야 하는데 지금의 농업(노동)구조로는 불가능에 가까우니 손쉽고 노동력이 덜 들어가는 농업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해 설계를 하기 위해서는 지을 작물에 대한 수취가격이 예측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경험과 하늘의 운에 맡길 수밖에 없으니 계획을 세운다는 것도 무의미하다. 농민들은 농업의 특수성 때문에 국가가 책임지고 수요(소비)를 예측한 공급(생산)정책을 세울 때 만이 농업 계획이 가능하다고 한다. 국가에서도 수급 정책을 못 세우는 데 농가가 개별적으로 고민해봐도 답을 찾을 수 없음은 달리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전 국민 자급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맞춰 국가가 생산계획을 세우면 농민들은 이를 기초로 해서 한해 계획서를 만들어 농사를 짓고 추수한 후에 결산서를 만들 수 있으면 어떨까? 꿈만 같은 이야기지만 농민들은 이런 마음으로 한 해 농사 계획서를 세우고 싶다. 농가가 한해 계획서를 만들고 농사지어서 생활할 수 있을 때 젊은이도 들어오고 우리의 농업의 미래가 보이는 것이지 스마트 농정처럼 요란한 구호가 난무한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청년이 돌아오지 않는데 현재의 노령 농민들은 나갈 수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면 향후 농촌과 농업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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