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나비소셜컴퍼니 CSV 디자인연구소장)

지난해 “모두의 정원”을 시작했다. 봄기운이 실컷 퍼졌을 때 일단은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었다. 흙내음과 땅의 기운, 식물과 함께 하는 것을 동경하는 개인적 취향이 더 많이 작동했지만, 바람은 장애로 경계가 존재하는 ‘서로’를 ‘우리’로 만나게 할 수 있을까였다. 생명을 느끼고, 성장을 함께 공들여 만드는 과정은 장애나 비장애를 떠나 모두에게 필요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성장하는 동안 농사라고는 집 주변 화단에 아빠가 심어두신 고추, 상추를 들락거리며 한 줌씩 따서 여름철 주메뉴로 삼았던 기억이 전부였지만, 그 싱그러움과 신기함이 좋아 20대 여행길에서는 일부러 육묘장과 농장 일을 찾아다니며 하기도 했었다. 자라면서 느꼈던 기억 덕분에 고추, 상추, 방울토마토는 우리 집 화단의 매년 단골이다. 자라고, 꽃 피고, 열매 맺는 시간 뒤의 작은 수확은 물주고, 오가며 들여다본 아이들의 눈에 생기를 채워주고 더러는 아주 빵빵한 어깨 뽕이 되어주기도 한다. 

소소하지만 스스로 키우고 수확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기에 더욱 설레기도 했다. 농사꾼도 아닌 사람들의 일단 해보기는 서툴고 아리송한 질문의 연속이었고, 맘처럼 부지런한 밭일도 쉽지 않았기에 우리의 텃밭 이름은 ‘아무튼 텃밭’이 되었다. 수세미도 동부(콩)도 방울토마토, 고구마도 제법 자립적으로(?) 자라주었고, 여름철 메밀은 짓궂은 날씨 속에서도 무릎 너머까지 자라 감성적으로 바라보면 마치 소금 뿌려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발달장애 친구들의 텃밭 활동은 흙과의 친분(?)을 만드는 것부터 숙제가 되었고, 지저분해져도 괜찮은 믿음을 주는 것도, 나날이 성장하는 생명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도 모두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부딪치며 배운 셈이다.

마침 민들레 132호에 네덜란드의 ‘케어팜(care farm)’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발달장애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 청소년부터 치매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에게 치유와 재활의 기회를 농장 활동을 통해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요양 시설이나 복지기관 등이 주로 하는 역할을 자연 속 편안한 환경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기획하여 케어팜 형태로 운영하는 사례가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장애나 치매, 정신질환 등의 어려움이 있어도 하루를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환경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업을 통한 재활과 역할 찾기가 가능해지고, 돌봄과 일의 의미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케어팜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대안 농업과 건강, 사회적 돌봄을 주장한 시민단체와 이에 호응한 전국 농업인단체들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특히 특수교육과 간호 관련 분야의 종사자들이 발달장애,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의기투합하여 만들었다는 굿랜드 케어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협력을 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기도 했다. 

사회에서 고립되기 쉬운 장애인, 치매 노인에게 필요한 ‘사람다운 삶’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일은 우리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용기를 주는 것과 함께 ‘모두’가 가꾸어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정원’을 만드는 일로 느껴진다. 지금은 아직 오지 않은 ‘봄’을 상상하겠지만, ‘봄’이 오면 상상은 현실이 될 테고, 힘껏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작은 화분에 나의 꽃을 심고 나의 이름표를 꽂는 것부터 생명을 느끼며 겨울을 지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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