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소양로 기와집 골의 집들이 헐린다는 소식에 그리운 어린 시절의 기억 한 페이지가 부욱 찢겨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해서 중학교 1학년 때까지의 기억이 오롯이 담겨 있는 동네. 크리스마스가 되면 창문 너머 마주 보이는 전도관(소양로 언덕에 있던 교회) 지붕에는 루돌프가 끄는 산타할아버지의 마차가 하늘로 날아가듯 올려져 있었다. 예쁘고 신기한 그 모습을 내다보고 또 보던 기억. 쥐불놀이한다고 빈 깡통에 나무를 넣고 불을 붙여 전도관 비탈길에서 빙글빙글 돌리다가 그 아래 대파를 거둬들인 빈 밭으로 휙 던지면 불꽃들이 하늘에 별처럼 흩뿌려졌었는데…. 

기와집골 셋째 골목에는 날렵한 기와지붕이 인상적이었던 마당 너른 할머니 댁이 있었다. 간장 공장 사장님이 아버지인 우리 반 친구의 집. 최 부자 집 그리고 칠공주네집. 아카시아 꽃을 소재로 노래를 만들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던 김태곤 선생님 집. 그리고 우리 학교, 내 친구들이 위아래 골목에서 함께 살기도 했다. 저녁이면 가로등 불 아래 우르르 모여서 함께 다방구도 하고 숨바꼭질도 했었던 골목길이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았을 때 너무 왜소하고 작아서 당황했지만 그래도 주렁주렁 걸린 이야기가 반가웠었는데 이제 모두 헐린다. 시간은 언제나 지나고 있고 거기에 담긴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생각 속에 살고 언젠가는 역사의 흔적으로만 남겠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라는 악기처럼. 아르페지오네는 기타처럼 6개의 줄로 반음씩 나누어진 지판을 가지고 있지만, 첼로처럼 세워서 활로 문질러 연주할 수 있게 만들어진 악기다. 이 악기를 위한 음악 작품으로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단 한 곡 밖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악기의 실물은 지금 박물관에 소장되어 이름과 함께 박제로 남아있다.

슈베르트는 평생 가난한 삶을 살았으며 그 삶도 평탄치가 않아서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오직 어제의 슬픈 생각만이 다시 나를 찾아옵니다. 이처럼 나는 즐거움이나 다정스러움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렸고,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나의 슬픔의 표현입니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은 이해를 날카롭게 하고 정신을 굳세게 해줍니다”라고 일기에 적어 놓았다고 한다.

슬픔 속에 내재한 아름다움의 메타포. 슈베르트의 선율이 유난히 아름다운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악기는 사라졌지만, 슈베르트만의 그 슬픔이 아름답게 각색되어 깔린 그의 음악 ‘아르페지오네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지금도 연주되고 있다. 아르페지오네 대신 주로 첼로가 대신 연주하는데 지금의 첼로보다 피치가 높았던 악기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작곡된 작품을 첼로로 연주한다는 것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은가보다. 높은 음역의 빠른 패시지, 변화무쌍한 리듬을 자유자재로 연주해야 하기에 첼리스트들에게 고난도의 연주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듣는 이들에겐 그 멋진 연주가 더 큰 감동으로 흘러든다. 첼로의 뭉툭하면서 애잔한 선율과 함께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피아노의 콜라보가 날렵하고 부드럽게 허공에 울려 번지면 금방 내가 선 자리가 로맨틱한 공간으로 바뀌는 경험. Allegro(빠르게)에서 Adagio(아주 느리게)로 이어가다가 다시 Allegro(빠르게)로 연주되는 노래. 눈이 푸짐하게 내리는 날 찻물을 보글보글 끓이며, 창 너른 공간에서 아련한 옛 추억의 냄새가 짙게 깔린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듣는 우아한 사치를 한 번 누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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