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따뜻한 숨결 타고 옛날부터 전해온 아름다운 이야기 들려줄게요~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의 반짝이는 시선이 모인다. “옛날 옛날에~”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아이들과 나 사이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좋은 분위기가 생겨난다. 우리끼리만 공감하며 상상으로 그려보는 이야기 속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나, 헨젤과 그레텔처럼 긴장감이 좀 있는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끝날 때 아이들은 기분 좋은 안도의 한숨을 “하~ ”내쉬기도 한다. 

어제는 그림 형제의 이야기 중 “홀레 할머니”를 입학을 앞둔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홀레 할머니는 독일 헤센 지방에서 전해오는 눈을 내려주는 할머니 이야기다. 많은 옛이야기가 그렇듯, 두 자매가 등장한다. 게으르고 못생긴 딸과 예쁘고 부지런한 딸,

착하고 부지런한 딸은 많은 집안일을 해야 하고,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실을 자아야 했다. 실패에 묻은 피를 씻으려던 착한 딸은 우물에 실패를 떨어뜨리고, 찾기 위해 우물 속으로 들어간다. 우물 속 세상에서도 아이에게는 과제가 다가온다. 잘 구워진 가마 속 빵을 정리하고, 사과나무를 흔들어 사과를 따고. 흘레 할머니 집에 도착한다. 흘레 할머니의 깃털이불을 털어 세상에 눈이 날리게 하는 일을 비롯해 집안일을 성실히 한 후 황금을 선물로 받아 돌아온다.

황금을 샘낸 게으르고 못생긴 딸은 손가락에 피를 내기 위해 찔레 덤불에 손을 넣었다. 이 부분에서 이구동성 아이들의 탄식이 들렸다 “아~ 진짜 나쁘다.” 게으른 딸은 우물에 실패를 던진 후 자기도 우물로 뛰어든다. 우물 속 세상에서 빵 가마와 사과나무를 만나지만 외면한다. 흘레 할머니 집에서의 첫날은 황금을 생각하며 일을 열심히 하지만, 바로 게으름을 피우고 3일째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게으른 딸이 기대했던 황금 대신 역청을 선물로 준다. ‘온몸을 뒤덮은 역청은 평생 떨어지지 않았다’로 이야기는 끝난다. 옛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과제를 만나고, 역경을 만난다. 착한 주인공은 묵묵히 그 과제를 해결하고 역경을 견디어 내고 좋은 것들로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야기 속 못된 인물들은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고,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는 외면하고, 최후에는 벌을 받는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들은 주인공과 함께 과제와 역경을 지나고, 상을 받을 때 함께 기뻐하며,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샘을 낸 나쁜 인물이 받는 벌에 안도한다. 화면이나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들려주기에 듣는 아이들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이야기 속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생동감 있게 그려지기에 자기가 만들어낸 주인공에 더 쉽게 이입될 수 있는 것이다. 유아기 아이들의 상상력은 생애 어느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자기가 만든 상상 속에서 주인공과 동반한 아이의 내면에는 자연스럽게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심이 자리 잡게 된다. 

우리 옛이야기를 찾고 알려온 신동흔 선생님은 이야기 속에 수많은 사람의 경험과 철학이 응축되어 있다고 한다. “전해오는 과정에서 자동으로 걸러져 의미 있는 것들만 살아남아 삶의 진실을 꿰뚫는 핵심스토리로 남은 것이 이야기이다”고 《옛이야기의 힘》에서 전한다. 

사랑하는 어른의 따뜻한 목소리로 두런두런 들려주는 이야기, 함께하는 공간과 시간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이 자라고 상상력이 자극되며 내적인 자양분이 쌓여간다. 오늘의 아이들은 실제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적다. TV도 책도 흔하지 않던 때 살았던 아이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큰 혜택이 있었다. 화면을 응시하던 아이의 눈빛을 마주해보자. 생기를 느낄 수 없다. 짧더라도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노래를 불러줄 때 아이의 눈빛은 생기있게 반짝거린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은 10분으로도 충분하다. 하루 10분, 아이와 함께하는 그 시간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이는 자라고, 유아기는 빠르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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