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최근 들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밥 한번 먹자’이다.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하자고 특정하지 않았기에 약속은 아니고 아직 지킬 가능성이 있는 미래 사건이기에 시비를 가릴 수는 없지만 거의 지킨 적이 없으므로 일정 부분 거짓말일 수 있다. 내심 지켜지지 않을 것 뻔히 알면서 의례적인 인사처럼 내뱉는 말이기에 거짓말인 건 분명하다. 

거짓말(Lie)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가 의외로 많다. 대강 떠오르는 영화만 해도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정을 그득히 담은 〈제이콥의 거짓말, Jakob the Liar〉(1999), 칸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비밀과 거짓말, Secrets and Lies〉(1996), 기욤 카네 감독의 〈프렌즈: 하얀 거짓말, Little White Lies〉(2010), 〈거짓말의 빛깔, The Color Of Lies〉(1999) 등이 있다. 

물론 우리 영화로도 문제작인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1999)이 있지만, 일본의 거짓말 소재 영화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4월은 너의 거짓말, Your Lie In April〉(2016),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2013), 〈거짓말은 자란다〉(2015), 〈약 서른 개의 거짓말〉(2004) 등 영화제목조차 간지럽게 정하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 일본인의 심리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거짓말을 문화사적으로 접근하려는 이들에게 〈거짓말의 발명, The Invention of Lying〉(2009)만큼 좋은 교재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100% 진실만을 말하는 세상은 어떨 것인가 하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진실한 영화 시나리오를 쓴 주인공은 우울한 14세기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된다. 데이트한 여성으로부터도 못생겼다는 진실한 메일을 받는다. 

은행에서 월세 대출을 받기 위해 최초로 거짓말을 창조한 주인공은 점차 거짓말을 진화시키기 시작한다. 거짓말로 부와 명예를 얻은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에게 접근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어 마침내 결혼에 이르게 된다. 주인공은 여성이 만든 음식이 맛있다고 거짓말하면서 행복한 삶을 산다는 내용이다.

이와는 반대로 진지함으로 일관하다 마지막에 거짓이 들통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드디어 진실이 드러나는 미스터리 장르의 영화 〈굿 라이어, The Good Liar〉(2019)는 거짓으로 거짓을 밝혀내는 심리 드라마이다. 완벽한 거짓말은 진실한 말로 아무리 추궁해도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거짓말이 진실한 말보다 논리적으로 훨씬 단단하기 때문이다. 

나이 든 여자 주인공은 어릴 적 겪었던 끔찍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철저한 거짓말쟁이에게 다가가 거짓 사랑하는 상황을 만든다. 일생 거짓말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남자는 거짓으로 주인공의 재산을 삼킬 계획을 짠다. 남자의 의도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어 순진해 보이는 여자 주인공의 재산이 사라지려는 순간 오히려 남자의 모든 재산이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팩트에 근거했다면서 교묘하게 위장된 거짓말,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지 못하도록 논리적으로 정교하게 짜놓은 거짓말이 난무하는 현시점에서 진실을 빛나게 하기 위한 거짓말, 거짓을 폭로하기 위한 거짓말, 미리 거짓말인 것을 공포하여 즐거움을 주는 거짓말, 진실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내미는 소소한 거짓말이 존재하기에 세상이 조금은 즐거운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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