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면 3·1절 102주년이다. 우리 민족 모두가 만세운동에 나섰고, 춘천에서도 1919년 3월 28일 시내 장터에서 천도교 교도 이준용, 박순교, 허기준, 허현 등이 장터 군중 수십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특히 허현의 경우는 헌병보조원으로서 복무하다가 총을 버리고 함께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가히 전 민족이 떨쳐 일어선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3.1절에 대한 무지한 국민이 늘어나고 있음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오래된 자료이지만 2010년 제91주년 3·1절을 맞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전국 초중고생 3천919명을 상대로 실시한 ‘3·1절 관련 학생 인식에 관한 조사’에서 “3·1절을 어떤 날로 알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정확한 설명을 고른 학생은 59.1%에 불과했고, 나머지 40.9%는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날을 기념하는 날”, “애국선열을 추모하는 날”, “헌법 제정·공포 기념일” 등 부정확한 답변과 “모르겠다”(5.1%)는 응답이었다고 한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의 인식이 어떨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터이다.

국경일(國慶日)이란 “나라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법률로 정해 놓은 경축일. 우리나라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이 지정되어 있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경사로운 날’이라는 뜻이다.

실제 과거의 역사는 3·1절을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로 상정하고 기념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3·1운동 그다음 해인 대한민국 2년, 1920년 3월 1일자 ≪독립신문≫은 특별호 3·1절 특집을 발간하여 “(전략) 차금 옥중에 게신 형제와 자매 모다 생각하면 가슴이 터질 듯하지마는 천만대에 기념할 우리 민족의 부활일인 오늘 하로를 무한히 깃부게 축하하자, 놀자”고 소개하며, 상하이 올림픽대극장을 빌리고 교민들에게도 알려 7백여 명이 참여했다고 중국 상하이 행사를 소개하고 있다. “기쁘게 축하하자, 놀자”라는 말이 가슴에 맺힌다. 또한 1949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사설에서는 “(전략) 명실상부하게 거족적 국경일로 남북의 삼천만이 다같이 한마음 한뜻으로써 즐겁게 노래하고 힘껏 뛰놀며 이날을 경축하자. 이것이 최대 국경일인 오늘을 맞이하여 최대의 축원이며, 최고의 이상이다”라고 맺으며, 3·1절을 ‘최대 국경일(最大 國慶日)’로 호칭하고 있다.

이렇듯 3·1절은 축제이자 나라 최대 국경일로 함께 기뻐하고 축하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시민이 참여하고 즐기는 흥겨운 국경일이 아니라 일제에 항거한 사건으로 박제화된 공휴일로 전락한 듯하다.

국경일로서 3·1절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시민들이 참여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말 그대로 축제의 날이 되어야 한다. 역사를 모른다고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다채롭고 흥겨운 행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거족적 외침과 다짐, 그 정신이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3·1절은 3·1독립선언서에서 “우리는 지금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고, 조선인이 자주민이라는 점을 선언한다”고 당당히 밝히듯이 독립 축하일이다.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자”는 계몽적 기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손에 손에 든 태극기가 물결치는”, 시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시민참여형 국경일로 거듭나야 한다. 춘천시정부 및 독립운동 유관기관들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춘천형 3·1절’ 행사를 기획하여 ‘대표적인 3·1절 기념 도시 춘전’으로 발돋움하기를 응원한다.

3·1절, 가족·지인들과 함께 공지천 인근 의암공원이나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찾아보자. 의암공원 ‘평화의 소녀상’도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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