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 현장 인터뷰] “선조들의 큰마음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집니다”
[취재기자 현장 인터뷰] “선조들의 큰마음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집니다”
  • 홍석천 기자
  • 승인 2021.03.0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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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 유남선 위원장
강원독립운동은 크게 ‘의병운동, 3·1운동, 사회운동’

지난해 6월 춘천시 보훈회관에서는 1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강원도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의 창립총회와 출범식이 열렸다. 강원도는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지만 이들을 기리는 사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서훈을 받은 강원도 출신 독립유공자는 600명을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 3천 명이 넘는 경상도나 2천 명을 웃도는 전라도 등 타 지역보다 턱없이 적다. 강원도가 의병운동의 중심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낮은 기록을 보이는 것은 체계적인 연구나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강원도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 강원도 독립운동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민간에서 조직됐다.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유남선 위원장을 《춘천사람들》이 만나고 왔다.

유남선 위원장은 과거의 독립운동 정신을 미래로 넘겨주는 것이 현재 시민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강원도 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절실

강원도 독립운동기념관, 얼마나 진행됐나요?

지난해 6월 10일 사단법인 강원도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창립됐습니다. 2020년 9월 28일 강원도청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창립일로부터 시일이 다소 걸렸는데, 그것은 광복회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보훈처로부터 유권해석을 받고 도청을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20년 10월에는 법원 등기도 마쳤습니다. 지난해 11월까지 법률·행정적 절차를 마친 셈입니다.

학계, 정계, 종교계 분들로 구성된 고문단, 언론계와 지자체 단체장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 도내 사회단체와 문화계 등의 인사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도 출범했습니다. 추진위원회는 사료분과위원, 홍보·선전·모금분과위원, 건축분과위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올해 가장 중점을 두는 사업은 홍보·선전입니다. 지금은 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사업을 도민들에게 알려야 할 때입니다. 많은 도민들이 참여할 때 의미 있는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 사업과 모금운동도 함께할 계획입니다.

또 현재 강원도청에서 기본용역을 발주한 상태입니다. 용역 결과가 나오면 건립부지를 확정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가게 될 예정입니다.

독립운동기념관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꾸려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전국으로 흩어져 있는 강원도 독립운동 사료를 모두 수집하고, 기념관에서 누구나 한눈에 강원도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제시할 계획입니다. 또 단순히 유적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과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구상 중입니다.

 

춘천은 전국 의병운동의 중심지

춘천의 독립운동 역사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생각해 보면 선조들에게 너무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노라면 그분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큰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인들처럼 사소한 것에 연연해 하기보다는 대의를 품고 필요하다면 목숨마저 초개와 같이 버리셨던 큰마음을 품으셨던 분들입니다. 후손된 입장으로 이러한 선조들의 업적을 기리는 마땅한 공간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원도에 기념관 하나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강원도의 독립운동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3·1운동 이전의 의병운동이 있고, 둘째는 전국적 운동인 3·1운동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1920년대부터 해방까지의 사회운동이 있습니다.

강원도는 세 시기 모두 활발히 활동했지만 의병운동에 대해서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춘천은 의병운동의 중심지이자 시발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유인석 의병장의 경우, 국내에서는 의병 통합운동을 전개해 전국의 의병을 규합했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의병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시아버지 유홍석을 따라 여성의 몸으로 의병운동에 직접 가담했던 윤희순 의병을 생각하노라면 당대 여성이 어떻게 그토록 대담하게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지면을 통해 모든 독립사를 소개할 수는 없지만 춘천이 의병운동의 선도적 역할은 했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춘천의 대표적 항일비밀결사단체,‘상록회’

강원도의 3·1운동과 사회운동은 어땠나요?

3·1운동의 경우 강원도지역은 다소 늦게 진행된 편입니다. 서울에서부터 독립선언서를 운반하다가 일제에 의해 압수되는 등의 사고로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주로 5일장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처음에는 독립선언서를 돌리고 만세운동을 펼치는 평화적인 운동이었지만 일제가 강압적으로 진압하고 체포하기 시작하자 이후에는 헌병주재소와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적극적인 운동으로 변했습니다. 이렇게 3·1운동은 약 두 달 동안 진행됐습니다.

3·1운동 이후 사회운동은 신간회와 같은 전국적인 운동이 강원도에서도 펼쳐졌습니다. 독자적인 활동으로는 춘천고등학교의 상록회가 대표적인 항일운동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상록회는 1937년 3월 14일 강원 춘천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항일비밀결사단체로, 1926년 10월 일본인 교사가 우리 민족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자 배일맹휴를 감행했고, 1938년에는 재학생들과 독립지사들이 상록회를 조직해 춘천 및 만주 등지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38년 ‘상록회사건’이라고 불리는 일본 경찰에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해 137명이 연행됐습니다. 이때 10명이 형을 받았으며 백흥기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순국했습니다. 상록회는 그 뒤에도 활동을 계속하다가 1941년 2월 24일 또 다시 24명이 검거 투옥돼 모진 고문을 당했으며 고웅주가 김천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이처럼 상록회는 일제에 정면으로 저항하며 항일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일본의 사과 강력히 요구해야 할 때

과거의 독립운동 역사를 기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고, 따라서 또 언제든 빼앗길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일본은 결코 과거의 만행에 대해 사과하고 있지 않습니다. 독일의 경우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독일의 양심을 보여줬고, 그 결과 지금 유럽의 리더가 됐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지금도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중국, 북한,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함께 일본의 사과를 요구해야 합니다. 일본의 사과가 선행되어야지만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 각각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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