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오랜 대중음악 애호가)

1974년 아프리카, 지금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디오피아 오지 ‘하다르’계곡에서는 일련의 고고학팀 발굴작업이 있었다. 이곳에서 젊은 고고학자들은 역사상 인류의 기원을 밝혀 주는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한다. 인류 조상이라고 지금껏 알려져 있는 약 350만 년 전 인간 화석이었다. 최초로 직립 보행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이 화석은 발견과 동시에 전 세계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에게 뜨거운 찬사를 받게 된다. 화석의 발견으로 인류 직립 보행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두뇌 진화 발달이 아니라 도구 활용과 제작 능력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화석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자 초기 인류가 직립 보행했다는 사실은 여지없이 명백해지게 된다.

화석을 발견한 고고학팀은 그날 저녁 기쁨에 들떠 축하 파티 모임을 벌인다. 별이 쏟아지는 아프리카 밤하늘 아래에서의 파티는 분명 즐겁고 자신들이 이룩한 고고학 업적으로 얼마나 기뻤을까. 음악 없는 파티는 지루했을 것이고 그때 누군가 준비해 온 작은 테이프레코더에선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이 있어 즐거움도 배가 되었을 것이다. 흥분으로 들떠 있는 축제 현장에 음악이 퍼져 나갔다. 그 곡 제목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였다. 비틀즈가 남긴 음반 중 최고 명반이라고 대부분 인정하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일행 중 누군가 그 곡을 여러 차례 반복했기에 다음 날부터 그들이 발견한 화석은 ‘Lucy’로 불리게 되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공교롭게도 그 화석은 여자 화석이었다. 일행 중에 비틀즈를 꽤 좋아하는 이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Lucy’는 몸무게 약 28kg, 나이 25세 전후 여성으로 키는 110cm, 뼈가 변형된 것으로 의심되어 높은 곳에서 떨어졌거나 관절염을 앓았다는 점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Lucy’의 정확한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다. 아직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추측이 난무하지만 학명이 아닌 ‘Lucy’라는 그녀 이름은 정겹다.

노래 제목 <Lucy>는 존 레넌 첫 번째 부인과의 첫아들인 줄리안 레넌의 여자 친구 ‘Lucy O’ Donnell’에서 따 왔다. 1967년 줄리안은 유치원에서 그림 한 점을 들고 집으로 왔다. 아버지 존이 그림 내용을 묻자 줄리안은 별 모양이 하늘에 가득 펼쳐진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의 친구 ‘Lucy’가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하늘에서 놀고 있는 거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평소에도 신문이나 잡지에서 가사 내용을 생각해 내던 존은 줄리안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곧바로 이 곡을 만들어 냈다. 환각적 분위기와 멜로디, 존의 목소리와 반주에 잘 어울려 모호한 세상을 표현한 가사는 존이 비틀즈 시절 만들어 낸 걸작이다. 당시 비틀즈 멤버들, 특히 존은 L.S.D 약물에 깊숙이 빠져 지내던 시기였다.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곡목 이니셜은 L.S.D를 간접적으로 표현했을 거라며 방송과 평론가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존은 극구 부인하였다. 하지만 약물 의혹을 벗어내지 못한 채 B.B.C 방송국은 절대 방송 금지라는 판정으로 대중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비틀즈 팬들에게만 알려지는 곡으로 남게 된다.

2014년 뤽 베송 감독, 최민식,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이 출연한 영화 <Lucy>가 개봉되었다. 평범한 아가씨가 우연히 신종 약물 범죄에 연루되어 갖은 고생 끝에 뇌 능력을 100% 발휘하여 초능력자가 되는 줄거리다. 뤽 베송은 과학적이며 뇌에 관한 기록물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영화 내용은 현실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화석 ‘Lucy’, 존 레넌의 <Lucy>, 영화 <Lucy>는 서로에게 시공간을 초월하여 깊이 연결되어 있다. 영화 제목 <Lucy>도 그저 그렇게 우연히 지어낸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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