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춘천 녹색평론 독자모임 회원)

그리 오래 가지 않을 줄 알았던 이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퍼지고 장기화되면서 잠시 우왕좌왕했지만, 사람들은 바뀐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많은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 청년실업자 등이 겪고 있는 고통은 심각하지만, 국제경제는 여전히 굴러가고 있고 인류는 펜데믹 초기의 멘붕 상태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다.

코로나 19로 갑작스럽게 맞이한 비대면 상황도 전자매체와 통신수단 덕분에 그럭저럭 대처할 수 있었고, 그 백신이나 치료제도 예상대로 개발되어 접종이 시작되었다. 이런 와중에도 UAE와 중국 탐사선이 화성 궤도에 진입했고, 미국의 화성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는 화성 표면에 착륙해 화성의 토양과 암석 샘플을 채취해 보관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태양광 패널과 전기 배터리의 제작비용 감소와 성능 향상 속도는 더욱 빨라져 화석에너지를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는 기간이 예상보다 짧아질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류는 코로나 19라는 위기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너머 세상까지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이다. 인류가 현재 발휘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유발 하라리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을 ‘호모데우스(신적 인간)’의 경지로 끌어올릴 만한 수준, 즉 그것을 이용하여 상상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코로나19 충격 탓에 전 세계에서 최대 1억 명 가량이 작년에 극빈층으로 전락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세계 갑부 28만여 명은 작년 3월 말부터 5개월 동안 8천조 원 이상의 재산을 불렸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사회로 진입하면서 심화되었던 부의 불평등이 코로나19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지금의 현실이다.

영화 <승리호>뿐만 아니라 미래 인간의 삶을 보여 주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리는 미래는 매우 비관적이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환한 햇빛도 초록색 식물도 없는 병든 지구에서 다양한 모습의 인간들은 갖가지 사연들로 뛰어다닌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달로 소수의 부자들은 천국의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 나머지는 오염되고 파괴된 지구에서 지옥 같은 삶을 견디는 세상이다. <승리호>의 부자들과 선택받은 자들만의 세상인 <UTS>가 그렇고 선택받은 1%만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엘리시움>의 세상 또한 그러하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미래의 발달된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신적인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는데, 왜 많은 영화에서 그리는 미래 세상은 소수의 사람만 그 혜택을 누리는 것으로 나오는 걸까. 과학·기술의 힘으로 모든 인류가 천국의 삶을 살아가게 할 수는 없는 걸까.

과학·기술이 최고로 발달했다는 미국이 코로나 감염검사와 치료를 받는 비용과 절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비싸고 까다롭다. 이것은 과학·기술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시스템, 즉 사회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현재 인류가 당면한 코로나19나 기후위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기술은 기업의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하여 ‘UTS’나 ‘엘리시움’처럼 현재보다 더욱 불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이용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따지고 있지만, 좀 더 세월이 흐른 후에는 기후위기 이전과 이후로 시대를 나누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도 기후위기 상황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과학·기술의 힘으로 등장한 각종 전자매체와 백신과 치료제 등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관리하고 운영하여 이 코로나19 위기를 잘 넘긴다면, 후대 역사가들은 지금을 인류가 힘을 모아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했던 과정을 마치 리허설처럼 보여 주었던 역사의 한 대목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는 ‘돈’이라는 가치보다 ‘모두의 생명’이 더 우선시되는 새로운 사회를 열었던 계기가 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미래는 어떤 사회일까. 그 사회는, 과학·기술이 지구 환경의 보전과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는 사회구조인 ‘녹색사회주의’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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