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미 (양구 석천중 음악교사)

길지도 않은 생에 웬 이별이 이렇게 많은 걸까. 내가 돌아서서 떠나야 하는 자리도 있고, 나를 두고 가 버리는 것들도 참 많다. 견딜 수 없는 생각을 밀어내고 싶어 사도신경을 자꾸 되풀이한다. 그림 빠져나간 허전한 벽 같은 세상인데 그 와중에도 봄이다. 어딘가 비어 버린 듯한 공간 속에서도 산수유 꽃눈이 터지고, 노란 햇살이 오소소 내려 덮인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어도 커피 한 잔의 온기로 춥지 않다. 아직 빈 가지를 뿔처럼 받치고 선 나무들도 살금 연둣빛 물이 오른다. 지금 이 공간에 저 은사시나무를 닮은, 목관악기의 음색이 흐르면 참 좋겠다.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의 물결 같은 음색에 메아리처럼 화답하는 클라리넷의 선율이면 어떨까. 

대학교 4학년 때 누군가 한번 불러 보라며 건네 주었던 악보는 원본이 아니고 복사본인 데다가 너무 커다란 악보라서 이리저리 접어 둔 자리는 글씨가 잘 보이지도 않았었다. 슈베르트의 <바위 위의 목동>이라고 제목이 쓰여 있었다. 아주 긴 노래였고, 게다가 클라리넷의 오블리가토가 붙어 있었다―웬만한 리트(독일가곡)는 거의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이 곡은 피아노와 클라리넷과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는 형태이다―. 당시 연습실에서 가장 많이 마주쳤던 우리 학번, 클라리넷을 전공한 예비역 형에게 부탁하여 함께 연습했었던 옛 추억 속의 가곡. 나중에 깨끗한 악보를 사려고 ‘대한음악사’에 갔다가 악보 값이 너무 비싸 빈손으로 돌아와서 그 낡은 복사본 악보가 그렇게 귀한 것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었다. 

내 파트너의 클라리넷 소리는 연습하러 올 때마다 눈부시게 달라져 있었는데 내 노래는 별반 진전이 없어서 무척 미안하고 속상했지만 그래도 졸업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마련한 <두 명의 음악회>에서 내 노래의 레퍼토리에 넣을 수 있었던 그 느낌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내게는 아주 특별한 노래이기도 하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득한 계곡이 주는 깊은 울림처럼 피아노의 전주가 시작되면 반대편에서 비밀스런 떨림으로 전달되던 메아리처럼 저 아래서부터 번져 오는 클라리넷의 선율이 아련하게 번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프라노의 노래. 노래는 소프라노가 부르지만 화자는 어린 목동이다. 어린 소년의 잃어버린 사랑을 순수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그랬을 거라 짐작된다.

전반부는 서정적인 선율로 연인을 그리는 목동의 그리움과 슬픔을 담고 있어 점차적으로 느리고 우울한 느낌의 가락으로 치닫다가 후반부로 들어서면 클라리넷의 가볍고 경쾌한 소리가 눈부신 기교로 연주되고 소프라노의 콜로라투라가 흥겹다. 깊은 계곡에 봄이 온 것이다. 이제 고뇌를 벗어 버리고 봄이 온 계절 속으로 여행을 떠날 거라고 가볍게 뒤돌아서는 소년의 희망으로 노래는 끝을 맺는다. 

슈베르트의 곡들은 대부분 남성 음역을 위해 작곡되었거나, 남성과 여성을 불문하고 노래할 수 있도록 만든 곡들이 지배적이지만 이 노래만큼은 여성 가수를 위해 작곡된 몇 안 되는 곡 중 대표적인 곡이다.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 군둘라 야노비츠, 캐슬린 배틀의 목소리로 비교하며 들어보아도 좋을 듯하다. 

이 곡을 작곡하고 일 년 후 슈베르트는 돌아올 수 없는 먼 여행을 떠난다. 살아서 힘들고 고독했던 슈베르트도 그 여행길에서는 평온했을까. 아프게 떠나는 것들, 그리고 새롭게 다가서는 것들 속에서 희망처럼 봄을 맞으며, 나도 이별하는 것들과 악수한다. 잡은 내 손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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