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영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나이들기좋은마을팀 팀장) 

기지개를 켜듯이 마을사람들의 움직임도, 땅속에 뿌리내린 것들의 기운도 확실히 달라졌다. 그런데 겨울답던 지난 1월, 마을어르신 네 분이 동파를 겪거나 넘어져서 아들네나 병원으로 가신 채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어떻게 지내실까?” 어르신들의 근황이 궁금해지면서 작년 봄이 떠올랐다.

작년 봄엔 의욕을 가지고 마을어르신들에게 필요하거나 불편을 겪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모사업마다 지원을 했다. 이후 여러 가지 사업을 지원받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진행했다. 그때는 그게 어르신들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어르신 댁에 갈 때마다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일 새가 없었고 점점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어르신들은 “바쁜데 미안해서 어쩌나”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고, 나는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하는 걸요”라는 말을 반복해서 드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반복하는 말이 진심인지 형식적인 말인지 나 또한 헛갈렸다. 가끔은 어르신 댁에 문제를 해결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선 자책을 할 때도 있었지만 어르신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한 것에 대해선 자책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올 2월까지도 사업 정산을 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는 사이 어르신들과 마음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졌음을 느꼈다. 난 그저 마을어르신들에게 바쁜 사람, 가끔 고마운 사람일 뿐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또한 어르신들이 필요하다고 자주 말씀하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정작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선 이게 정말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일이었나 싶을 때가 많았다. 더 나아가 내 일을 만들기 위해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르신들과 깊게 만나지 못한 결과였고, 복지사업을 하는 사람처럼 일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봄이 왔다. 겨우내 숨죽였던 흙 속 생명들이 흐물흐물해진 흙 사이를 턱걸이하듯 쑥 올라오고 있다. 천천히 보고 있으면 제 속에 제 할일이 있음을 알고 올라오는 그 모습에 마을어르신들을 돌본다고 행했던 일들을 돌아보게 한다. 겨우내 단단해진 흙 속에 있는 생명을 돌보겠다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행동이 어리석은 것처럼 어르신들이 불평불만으로 말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진짜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놓치고 있었다. 단단해진 흙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기다리면 봄이 오고 싹이 돋아나듯이 긴장하고 단단한 마음에 다가가고 꽁꽁 묻어 둔 한과 서러움을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어르신의 진짜 문제가 보이고, 그 문제해결을 함께 풀어 내는 길을 발견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자체로 웬만한 문제는 죄다 풀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떠했던가? 무엇을 해결해 드리겠다고 설쳐대며 시설을 고쳐 드리고 반찬을 가져다드리고 머리카락을 깎아 드렸을 뿐 마음의 소리엔 귀 기울이지 않았다. 고마운 일을 했을 뿐 마음이 통하는 일은 아니었고, 괜찮은 사람은 되었지만 마을사람은 아니었다. 이런 되돌아봄으로 다시 봄을 시작하려고 한다. 마을어르신이 나이 듦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귀 기울이며 생을 돌아봤을 때 잘 살아왔다는 만족감을 가지고, 날마다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어렵지만 돈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돌봄에 대해서 다시 보며 새로운 실천으로 나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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