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국터 기념비

원래 맥(貊)은 예(濊)·한(韓)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주된 구성체로서, 《시경(詩經)》 · 《서경(書經)》 등에 따르면 중국 주대(周代)에 주나라의 동북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북방정세의 변화 또는 다른 요인에 의해 한반도 내로 이주한 고구려와 계통을 같이한 맥족(貊族)의 한 집단이다. 맥국(貊國)의 위치는 《삼국사기》 지리지에 당나라 사람 가탐(賈耽)이 쓴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해 “고구려의 남동쪽 예의 서쪽이 옛 맥의 땅인데 지금 신라의 북쪽인 삭주(朔州: 지금의 강원도 춘천)이며, 선덕여왕(善德女王) 6년(637)에 우수주(牛首州)로 삼아 군주(軍主)를 두었다”고 하였다. 춘천지역에는 맥국과 관계된 지명 및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덕두원(德斗院) 남방에 위치한 삼악산성(三嶽山城)은 신라(또는 예국)의 공격을 받고 맥국이 최후를 마친 맥국산성(貊國山城)이라고 전해 온다. 또 지금의 등선폭포는 당시 쌀을 씻었던 곳이라 하여 ‘시궁치’, 아랫마을은 군사들이 옷을 말리던 곳이라 하여 ‘의암(衣巖)’ 등으로 불린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맥국터 기념비(완쪽)와 비문(오른쪽)    출처=《춘천시 향토문화유산총람》 

맥국터 기념비는 맥국터로 추정되는 신북읍 발산리 483번지에 세워진 기념비로 1995년 12월 20일 건립하였다. 안내문에 새겨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삼국시대 이전에 이곳 춘천에 맥국(貊國)이 있었다는 기록이 여러 문헌에 나타나고 이것을 검증할 만한 유물이 춘천 근교에는 산재하여 있다. 문헌에는 “맥국의 서울이 지금의 춘천시가지 북쪽 13리 소양강 북쪽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강원도 각 고을의 삼국 이전의 연혁(沿革)에서 그곳 부족국가의 도읍지 위치를 이정(里程)까지 밝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맥국의 서울이 유일한 기록으로 그곳이 바로 춘천시 발산리 이 비가 서 있는 일대로 추정된다. 이곳 발산리 일대가 맥국과 도읍지였다는 것은 앞서의 문헌기록으로도 그러하거니와 이곳에 구전되어 오고 있는 “왕궁터”, “맥뚝(土堤)” 등으로도 이것을 가늠할 수 있다. 2천 년 전의 옛 도읍터를 정확히 상고하기는 쉽지 아니 하나 춘천에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읍의 옛터가 있다는 것은 이 고장 사람들에게 강원도의 수부의 시민이라는 자긍심을 높이는 역사적 맥락이라 할 것이다.

출처=춘천시의회 향토문화연구회 외, 2020, 《춘천시 향토문화유산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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