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유아주도의 놀이중심 교육과정’.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다. 이는 유아기의 배움이 유아 스스로 주도해서 노는 놀이를 통해 모두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2019년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공통과정인 개정누리과정이 고시되었을 때 유아교육 현장은 술렁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제 중심의 연간 교육계획을 세우고, 주제에 맞는 흥미영역을 구성하여 ‘자유선택 활동’을 하는 것을 유아교육 과정으로 운영해 온 것이다. 교사는 주제에 따른 목표를 세우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업을 계획하여 교재·교구를 배치한다. 언어영역, 수·조작영역, 음률영역, 역할·쌓기영역, 과학탐색영역, 미술영역에 매주 주제에 따른 활동자료들, 교재와 교구를 제공했다.

어린이들은 월요일 아침, 그 주의 주제에 따른 새로운 교구·교재를 소개받고, 흥미영역 방문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따라 영역을 방문하여 놀이한다. 담임교사가 구성한 5~6개의 흥미영역을 순회하며 새로운 놀잇감(교재·교구)의 파악이 끝나면 곧 교사에게 요청한다. “이제 놀아도 돼요?” 교사의 허락을 받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영역은 ‘쌓기영역’이라는 것이 현장 유아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쌓기영역! 주마다 블록의 종류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리고 주제에 따라 시장을 만들지, 올림픽경기장을 지을지는 제안되지만 그 과정은 오롯이 아이들 스스로에게 달렸다. 다른 영역들이 구조화된 놀잇감(교재·교구)으로 지루하게 놀아야 한다면, 쌓기영역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주도적으로 놀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다.

사실, 그 쌓기영역 안에서 아이들이 공간을 만들고 놀이하는 과정에서도 다양한 배움이 일어난다. 블록을 10개 쌓은 것과 9개 쌓은 것의 높이가 다르고 같아지려면 몇 개의 블록이 더 필요한지 아는 것에서 수량의 개념을 터득하고, 필요한 블록을 친구에게 요청하거나, 나에게 있는 것과 교환하려는 과정에서 의사소통, 자기조절의 경험이 일어난다. 올림픽경기장을 만들었으니 블록 위에 한 발로 오래 서기 경기 만들기, 우승자에게 왕관 만들어 씌워 주기에서 신체, 예술 경험이 일어난다.

흥미영역과 아이가 주도하는 위의 쌓기영역의 가장 큰 차이는 어떤 놀이를 어떻게 진행할지의 주도를 교사가 아닌 아이가 한다는 것이다. 구조화된 흥미영역 순회를 마치고 쌓기영역에서 자기의 유능감, 창의력,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노는 그 시간이 아이에게 비로소 진짜 즐거운 놀이가 된다. 그리고 그 놀이에는 신체, 의사소통, 수, 과학, 예술의 다양한 배움이 통합적으로 들어 있다. 빈약한 성인의 창의력과 상상력의 개입은 없다. 

2020년 4월 9일에 제4차 어린이집 표준보육과정이 고시되었다. 제4차 표준보육과정도 전체적으로 영유아중심, 놀이중심을 추구한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 개정되며 교사의 전문성, 역량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화되었다. 아이 주도의 놀이를 관찰하고, 그 놀이 속에서 일어나는 발달, 배움을 읽어내 기록하고 지원할 부분을 찾는다. 여기서의 지원은 단순한 놀잇감 제공이 아닌, 정서적인 지원을 포함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유선택활동으로 유아기를 보내고, 대학에서도 주제 중심 교육과정을 배운 교사들이 유아 주도의 놀이 속에서 아이들의 발달과 배움을 읽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 개정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곳의 교사들은 공통적으로 놀라움을 표현한다. “아이들이 이렇게도 놀 수 있는지 몰랐어요”, “예전에 교재·교구 만들어서 알려주려던 것을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스스로 배우고 있었어요.” 이제 교사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은 유능하며 스스로 주도하는 놀이 속에서 각자의 개별적인 속도로 배우고,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엔 교사 외의 어른들의 차례다. 프로그램, 학습지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우리의 역할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유롭게 놀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는 것, 아이들의 놀이를 내적인 관계를 통해 지켜보고, 필요한 부분만 지원하며 애정으로 응원하며 바라봐 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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