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현 찻물터

청평 선동 식암 좌측편 폭포 위 바위에 사각형 두 개를 파내고 물길을 연결해 여(呂)자형의 유적이 있는데 안내판에는 ‘진락공 세수터’라고 적혀 있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는 2011년부터 이 유적을 이자현 찻물터라고 하자는 의견을 내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여 지역의 뜻있는 이들이 이자현 헌다례 모임을 만들어 2015년부터 매년 음력 4월 21일(이자현 거사의 열반일)이 돌아오는 주말에 헌다례를 지내고 있다. 정재경은 이자현 세수터라고 기록한 부분에 대해 청음 김상헌과 춘천부사 박장원이 남긴 기록이 근거가 되어 세수터라는 표현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락공 찻물터와 안내판.      출처=《춘천시 향토문화유산총람》 

“청음 김상헌이 《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식암(息庵)의 설명, 즉 ‘식암은 둥글기가 고니의 알과 같아서 겨우 두 무릎을 구부려야 앉을 수가 있는데, 그 속에 묵묵히 앉아 있으면서 몇 달 동안 나오지 않았다[舊誌息庵團圓如鵠卵 只得盤兩膝。默坐其中。數月不出]’는 말을 인용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였고, 석대 아래의 ‘돌을 파낸 곳’을 ‘손을 씻던 곳’[石臺下鑿石二所。眞樂公盥盆]이라고 하였지요. 이 ‘관분(盥盆)’이란 말은 제향 때 손을 씻는 물그릇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뒤 16년이 지난 1651년에는 춘천부사 박장원이 또 기록을 남겼는데, ‘파서 네모꼴인 것이 두 곳 있는데 희이자(진락공)가 손발을 씻던 곳이라고 전한다고 하였다[有鑿而方者二。所傳以爲希夷濯手足處云]’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관분이 유교용어라면 이 ‘탁수족처’는 좀 더 일반적인 표현입니다.

암자 하면 어디나 우물이나 샘터가 있듯, 선동의 식암에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면 당연히 먼저 먹는 물을 우선시해야지 씻는 문제가 거론될 여지는 그다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고, 차를 마셨다면 더욱이 맑은 물을 어디서 얻었느냐 하는 점이 중요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관분이니 탁수족처니 하는 표현들은 조선시대에 천대받던 승려사회의 반영이자 사대부들의 맹랑한 말법이라 여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정재경, 〈가을 산빛을 찾아, 청평사 산책〉,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카페 홈페이지 2015. 10. 6)라고 하며 세수터라는 표현의 부당성을 지적한다.

출처=춘천시의회 향토문화연구회 외, 2020, 《춘천시 향토문화유산총람》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