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훈 초대전 ‘숲·바람―默’
예담 더 갤러리, 5월 2일까지

해가 바뀐 지 넉 달이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전염병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봄은 왔고 그늘진 골목길 차갑고 단단한 담벼락의 제비꽃은 어김없이 꽃을 피우며 자연을 노래할 시간이 돌아왔음을 알린다. 때를 기다려 온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과 표현으로 자연을 노래한다.

유병훈 화가의〈숲·바람―默〉 연작들.

유병훈 화가도 그만의 언어로 자연을 노래한다. 대표작과 신작을 아우르며 ‘숲·바람―默’이라는 주제 아래 선보이는 18점의 작품들이다.

그곳에는 어깨를 맞대고 길게 이어진 산과 숲의 오솔길, 묵묵히 흐르는 강과 싱그러운 바람, 작은 씨앗과 흙, 돌멩이, 바위가 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먹으로 형상화된 여러 개의 점(點)과 무심히 그어진 선(線)이다.

화가의 오랜 주제이자 전시회 제목이기도 한 ‘숲·바람―默’을 미리 알지 못한 사람들은, 먹으로 만들어진 추상적인 점과 선 앞에서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릴 게 틀림없다. 당연한 반응이다. 화가는 단순히 재현하거나 모방하지 않고 조형의 최소 단위인 점과 선을 통해 자연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점으로부터 시작된다. 거대한 산과 묵직한 바위는 작은 씨앗과 흙 알갱이에서 비롯된다. 인간도 점에서 시작된다. 선을 이루는 오솔길과 산줄기, 계곡과 강물은 크고 작은 점들을 하나로 이으며 생명을 불어넣는다. 바람도 형태와 색을 갖고 있다면 하나의 선으로 스쳐 가리라.

결국 점과 선은 자연의 표상이자 삼라만상의 본질적 형태이다. 작가가 쉽고 익숙하게 자연을 그려 내지 않는 이유는 인간과 자연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고민의 결과 아닐까?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 때로는 멀리 떨어져 묻고 답하며 깨달은 자연에 대한 예찬과 경외감을 재현과 모방으로는 온전히 담을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화가의 자연은 어느 한 곳의 자연이 아니라, 그가 사는 춘천의 자연이고 남쪽의 섬진강과 지리산이며, 이 나라 곳곳의 자연이기도 하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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