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흥우(강원민주재단 기록사업위원장)

본의 아니게 2년 넘게 《춘천사람들》에서 멀어졌었다. 애정이 사라졌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애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려 말의 문장가 이조년(李兆年)은 그의 <다정가(多情歌)>에서 “다정도 병인가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고 읊었는데, 딱 그 말처럼 다정도 병은 병이다.

《춘천사람들》이 6년차에 접어들어 집행부를 일신(一新)해 기대감이 자못 컸다. 그러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는 아주 짧은 순간 만이 필요했다. 2개월이 지난 지금, 실망은 다시 절망감으로 더 깊이 추락했다. ‘춘사’에 관여하지 않았을 때가 오히려 그리울 정도로 여기저기서 탄식과 질타가 귓속을 어지럽게 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5년도 훨씬 전인 2015년 7월 7일 춘천시민언론협동조합을 창립할 당시와 그해 11월 4일 《춘천사람들》 창간호를 내던 때를 떠올려 본다. “협동과 참여로 만드는 신문”을 선언했고,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신문”을 표방했다. “파죽지세(破竹之勢)”를 외쳤던 그 패기가 지금 《춘천사람들》에 남아 있는가?

《춘천사람들》은 창간하면서부터 ‘레고랜드’와 총성 없는 전쟁을 벌였다. 창간 1주년이 지날 무렵부터 촛불혁명의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에서 봄까지 ‘춘사’는 거리에서 시민들과 동행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탄핵되고 바로 그다음 날 춘천시민의 공론장인 ‘아고라’를 열고 시민 주체의 자치와 분권 시대를 전망했다.

창간 당시 단 두 명의 기자였지만 지면은 그리 한가하지 않았다. 조합원인 시민기자들과 다양한 필자들이 지면의 빈 구석을 알뜰히 채웠다. 빈한했지만 사무실을 찾는 조합원들은 직원들이 낯설지 않았고, 직원들은 조합원들이 늘 반가웠다. 해마다 창간을 기념해 조합원 잔치를 벌였을 때는 흥과 정이 용솟음쳤다. 그게 ‘춘사’였다. 그랬기에 창간 2년 만에 ‘바른지역언론연대’의 34번째 회원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지역의 언론 환경도 많이 변했다. ‘시민주권’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지자체의 수장이 됐지만 진짜 “시민이 주인인 도시”가 됐다고 인정하는 시민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권위주의적 행정, 측근 정치, 토건 위주의 개발주의는 여전하다. 노회찬 전 의원이 즐겨 쓴 표현대로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행태만 확인했을 뿐이다. 소통행정을 강조하며 홍보기구만 비대해져 민간 영역의 저널리즘까지 너절해졌다.

여기에 상업자본의 물량 공세가 더해졌다. 백묘(白描)든 흑묘(黑苗)든 쥐만 잘 잡으면 됐지 뭔 자본 타령이냐고 힐난할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건강한 언론은 결코 권력이나 자본이라는 ‘좋은’ 토양을 용납하지 않는 법이다.

지금 ‘춘사’는 분명 위기다.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행보가 필요한 법이다. 과연 ‘춘사’에 비상구(非常口)는 있을까? 조합원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다시 ‘참여와 협동’의 정신을 호출할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넘으려고 하는 문턱의 문은 단지 비상구(非常口)가 아니라 이 맑은 봄날 창공으로 솟구치는 비상구(飛翔口)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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