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장면1. 한 드라마가 시대 고증을 무시한 중국 음식과 소품을 등장시키고 역사적 인물을 왜곡해서 묘사하자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급기야 광고를 내는 기업들에게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드라마는 결국 단 2회 만에 막을 내렸다.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이다.

장면2. 〈김치의 본고장은 한국〉. 지난 2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기고 글의 제목이다. 기고를 한 주부는, 한류에 심취해서 10여 년 전 서울을 여행했을 때 김치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이후 수차례 서울을 방문한 목적이 김치를 맛보기 위해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극찬했다. 특히 그는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억지 주장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발을 이해한다는 공감도 덧붙였다.

장면3. 미국 동부의 한인 고교생 단체 재미차세대협의회(AAYC)는 지난 4일(현지시간)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시가 매년 10월 21일을 한복의 날(Korean Hanbok Day)로 선포키로 했다고 밝혔다. 한인 고교생들이 해외에서 최초로 ‘한복의 날’ 제정을 이끌어 낸 것이다.

한복이 한국의 전통 복식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코리안’이라는 단어를 정식 명칭에 삽입했고, 한복도 한글 발음 그대로 ‘Hanbok’으로 표기했다. 10월 21일을 선택한 것도 한국에서 시행되는 한복의 날과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이밖에 더 많은 장면들이 있다. 공통점은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중국 정부의 역사 프로젝트인 ‘동북공정’부터 김치·한복 등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최근 벌이고 있는 ‘문화공정’에 대한 분노와 그에 대한 공감이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는 40만 명 이상이 동의해서 현재 답변 대기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강원도는 “한중문화타운은 지자체의 재정 지원이 없는 순수 민간사업으로 지자체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과거 최문순 지사가 “이 사업은 마음속에 까는 일대일로”라고 긍정 평가한 사실이 알려지며 도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왜 한국에서 중국 문화 체험을 해야 하냐?”, “강원도가 왜 중국 문화를 전 세계에 자랑하나”, “엄청난 선사 유물·유구가 출토된 세계 최대 규모의 선사유적지인 중도를 파헤쳐서 외국 놀이공원을 짓더니 이젠 문화 침탈하는 중국 문화공간을 짓겠다고?” 등 분노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방송사는 시청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고위 공직자가 실언을 하게 만든 건 결국 돈이다. 높은 시청률이 가져올 막대한 광고수입과 세금, 일자리 등 지자체의 경제적 이익 말이다.

하지만 차이나머니는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최근 미국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의 에이드데이터 연구소, 키엘 세계경제연구소,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등은 중국이 24개 개발도상국과 체결한 100개의 차관 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돈을 빌려 주면서 자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을 계약서에 다수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또한 최근 할리우드 제작사들은 차이나머니 눈치를 보느라 중국이 싫어하는 소재는 손도 못 댄다고 푸념한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는 상호 영향을 받으며 변화·발전하기에 중국과 그들의 문화를 배척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 이후 중화 민족주의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은 세대가 성장하면서 문화공정의 빈도와 강도가 더해지고 있기에 국민들의 반감은 타당하다.

문화공정의 바탕에는 이른바 K문화에 대한 시기와 견제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전통문화가 무너졌지만, 한국은 잘 보존된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뛰어난 대중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며 문화강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분노는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 기업과 공직자에게 전통문화와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에 더 관심을 기울이라는 메시지이다.

“1960년대 초 한국의 경제상황은 아프리카 가나와 비슷했다. 하지만 현재 두 나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문화’가 결정적인 요인이다.” 《문화가 중요하다》에서 새뮤얼 헌팅턴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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