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대중예술 애호가)

음악감상을 취미라고 하기엔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단기필마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비장한 심정으로 임했기에 언제나 도전이자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내게 주는 위안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고마움의 연속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이정표였다. 음악으로 공부하며 성장했고 성격 형성과 마음가짐, 대인관계, 성장해서는 비즈니스와 적자생존의 큰 틀에서 비교적 원만한 삶을 취해 온 것에 음악이야말로 언제나 최고의 스승이었다. 

오래전 학창시절 온방을 가득 메우는 감미로운 음악에 청춘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학생 신분임에도 멋스럽게 술 한잔이 주는 즐거움을 음악과 함께했고 음반과 턴테이블 주위의 책들은 든든한 동반자였다. 존 레넌과 짐 모리슨을 꿈꾸고 박인희와 마리아 칼라스처럼 노래 잘하는 사랑하는 여인과 살 거라며 우쭐대던 시절, 음악감상은 최고의 선택이자 놀이였다. 락, 팝, 고전이나 째즈, 우리 가요, 국악 어느 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좋은 음악이 있을까라는 즐거운 생각에 지쳐서도 화색이 돌았고, 그 많고 많은 음악을 다 듣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를 때면 괴롭기까지 했다. 지금도 그러한데 당시에는 오죽했으랴.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면서 듣고자 했던 음악을 더 손쉽게 접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매혹적인 음악에 더욱 심취하면서 세상에 나보다 행복한 이는 없을 거라며 홀로 자랑스러웠다. 음악으로 만나고 헤어졌던 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반가운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 그중에는 음악이 자신의 것인 양 빈틈없고 편협했던 이들도 있었으나 생각해 보면 불우한 사람일 뿐이다. 브람스가 베토벤의 아들이냐고 물어보는 이에게도 나는, 우리는 따뜻한 마음으로 설명하고 친절하게 안내해야 한다.

이 순간 나른한 몸을 이끌며 기대어 듣는 음악은 보통 때와는 달리 귀에 쏙쏙 들어온다. 평소에 스쳐 들리던 베이스 멜로디가 통통거리고 바이올린의 섬세한 음이 가슴을 후벼 판다. 멋진 목소리에선 나도 한껏 소리를 내지른다. 나도 가수다. 피아노 연주의 섬세한 손 떨림에,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혼신의 힘을 모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의 진지한 모습, 소프라노 여가수의 끝도 없이 울려 퍼지는 고운 목소리, 죽은 이와 남겨진 자를 위로하며 곡을 하는 씻김굿 현장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방울 소리, 찰랑찰랑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재즈밴드의 심벌즈 소리, 푸근한 관악기의 중후한 저음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것 없는 성실한 뮤지션의 연주에서 음악을 듣는 보람과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 가요는 더욱 심금을 울리고 심수봉의 솔직하고 애타는 가사는 사무치게 마음을 때린다. 조용필의 절절한 목소리는 자신인 양 두 눈을 질끈 감는다.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가득 찬 내 청춘. 보고 싶은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고 지나간 옛일이 영화처럼 스치고 사라지면 그때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 서글퍼진다. 어리석은 생각인 줄 알면서도 이제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나머지 술도 털어 마신다. 술도 떨어질라치면 왜 더 사 오지 않았을까 후회막급이다.

즐겁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기쁠 때나 사는 일이 힘들고 너무 지쳐 울고 싶어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애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때 음악은 무엇보다 큰 힘이다. 어디 음악뿐이랴. 예술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 애써 과찬해도 아깝지 않다.

술잔이 비워지면서 평소 홀대했던 멜로디가 귓전을 파고든다. 술잔은 흔들리고 턴테이블은 속절없이 돌고 있는데 휘청거리는 나도 빙빙 돌 때쯤이면 방안에 모든 게 어지럽다. 술 마시며 듣는 음악은 소주나 양주나 막걸리나 모두 평등하다. 술이 주는 즐거움 중 으뜸은 왜곡, 굴절, 회한 아니던가.

그리운 이름, 그리운 얼굴은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고 음악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술… 술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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