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사월에는 읽을 시가 많다.

4·3제주항쟁을 소재로 한 이종형의 〈바람의 집〉. 세월호의 아픔을 토해낸 신경림의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4·19혁명과 관련한 이영도의 〈진달래〉,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과 이 시에 화답으로 쓴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그리고 〈산에 언덕에〉 등등….

김소월이 3월의 시인이요, 김남주가 5월의 시인이라면, 4월의 시인으론 신동엽을 꼽을 수 있다. 특별히 4월 19일이 되면 먼저 떠오르는 시가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정끝별은 이 시에서 무엇을 더 덧붙일 수 있겠냐며 ‘벼락같은 시, 천둥 같은 시’라고 했다.

‘중립의 초례청’.

이 시어에는 남과 북, 좌와 우의 이념대립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서렸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동학농민전쟁의 곰나루에서 4·19혁명의 광화문까지 아우르는 저 중립의 스케일은 장쾌하지 않은가. 이 시에서 ‘저 중립의 시공을 꿰뚫은 시어’는, “껍데기는 가라”다. 시의 핵심적 전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의 진정한 성취는, 문자로 전할 수 없는 걸 전달하는 그 ‘발성’에 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요, 무릎 칠 일이다.

모음 “우-오-‘어’-아-‘에’-애-‘이’-으”.

이 순서는 발성할 때, 발동부가 가장 밑에서부터 차츰 위로 올라가는 차례로 적은 것이다. “껍데기”의 모음은 ‘[ㅓ]-[ㅔ]-[ㅣ]’다. [ㅓ]는 후설 모음, [ㅔ]는 전설모음으로 중고모음이며, [ㅣ]는 전설모음으로 고모음. “껍데기”를 발음하면, 발동부가 밑에서부터 차츰 위로 올라가는 ‘전설화(前舌化)’가 진행된다.

자음은 또 어떤가. “껍데기”에서 ‘껍’은, [ㄲ]과 [ㅂ]이 결합해 나는 소리로 그 위치는 입의 가장 안쪽인 연구개에서, ‘데’의 [ㄷ]은, 입 앞쪽 경구개에서, ‘기’는 유성음으로 연구개를 막았다 터지면서 기류가 이(齒)을 거쳐 나가는 소리다. “껍데기”의 자음도 역시 모음과 마찬가지로 뒤에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순서다.

“껍데기”를 발음하는 과정에서 ‘껍’은 내뱉고 싶을 만큼 딱딱하고 답답한 소리고, ‘데기’의 발음과정은 혀를 움직여 그 답답한 것을 앞으로 모으는 움직임과 같으며, “껍데기는 가라”에서 조사 ‘는’의 [ㄴ]은, 무언가 내뱉기 전에 모으는 단계와 같다. 게다가 뒤이어 술어 “가라”는, 그 의미도 의미려니와 개방된 모음 ‘[ㅏ]-[ㅏ]’다. 그에 더해 폐쇄음 [ㄱ]에서 유음 [ㄹ]로 변환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뱉어내는 순서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한 발성의 메커니즘이 시의 의미를 강조하고, 명료하게 하며, “외세는 물러나라”, “권력자를 타도하자”와 같은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청각적 청량감을 준다. 껍데기로 표상되는 외세, 권력자, 쇠붙이와 같은 비본질적 존재를 부정하는 시적 주체의 전언은, 문자에 기댄 게 아니라, 저 발성과 그 리듬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복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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