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춘천은 폐허가 됐다. 봉의산과 소양강 주변에서 춘천대첩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니 읍내가 성할 리 없었다. 도시는 초토화됐다.

약사동 산동네와 조양동, 봉의동에는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판자로 얼기설기 집을 지었다. 도시 한가운데 너른 터로 사람들은 먹고살려고 먹을 것과 팔 것을 이고 지고 나와 좌판을 깔았다. 어떤 이는 천막을 쳤고 어떤 이는 함지를 늘어놨다. 이곳은 옛 춘천 읍내장 자리였다. 조선시대부터 샘밭장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400년이 넘는 시장 터였다.

1980년대 중앙시장

1952년 3월, 미 9군단이 지금의 제일시장 자리에 595개 점포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을 중심으로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1954년부터 중앙시장이라 불린 이곳은 전쟁통에 고향과 가족을 잃고 몸과 마음마저 상한 이들이 모여 좌판을 깔고 삶을 목청껏 불러 대는 터전이었다.

군복시장과 양키시장은 중앙시장의 명물이었다. 군복시장은 현재의 농협 자리 앞쪽(함지 레스토랑 방향)으로 형성됐다. 미군들이 입던 중고 군복이나 몰래 내다 판 새 군복을 수선하거나 염색해 파는 장사치들이 줄을 섰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뒤 일거리가 마땅치 않아 좌판 하나 깔고 군복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천도 귀하고 옷도 귀한 시절이었다. 군복을 몰래 들여다 고쳐 팔며 쏠쏠히 이문을 남겼다. 돈은 곧잘 벌었지만 군복을 유통시키는 게 불법이었던지라 장사꾼들은 미군부대로 끌려가 조사를 받곤 했다.

1960년 전후 중앙로 뒤편 골목으로 군복시장이 이전했다. 좌판이 20여 개였는데 제비뽑기를 해서 자리를 정했다.

군복과 함께 미제품과 군수품도 유통됐다. 밀수로 들어온 미제품과 미군의 눈을 피해 시장으로 들어온 군수품 노점상이 가세하며 양키시장이 형성됐다. 미국 과자, 껌, 초콜릿, 버터, 치즈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나중에는 미제 그릇, 신발, 가전제품 등 품목이 늘어났다. 1980년대까지 양키시장에서 쇼핑하고 물건을 사는 것은 주머니가 두둑할 때나 하는 놀이였다. 국산 제품의 품질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2004년 춘천에서 미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양키시장의 자취는 거의 사라졌다. 지금까지도 미제를 내놓고 있는 한두 점포에만 흔적이 남아 있다. 

1960년 상인들이 돈을 모아 땅을 구입해 시장 건물을 지었다. 부지 1천336평에 335개의 점포가 들어섰고 ㈜춘천중앙시장이 발족됐다.(계속)

김효화(기록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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