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내가 지금은 소설을 쓰지만 (소설가라고 불리기에는 부담을 느낀다. 무명작가라 그런가?) 어릴 적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종이만 있으면 그 위에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는 곤하게 낮잠을 자는 어머니 얼굴까지 종이에 그렸다. 나중에 어머니가 그 그림을 보고는 “이걸 네가 그렸다고?” 하며 놀라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가 춘천교대부설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1958년 봄일 게다. 그냥 편히 입학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는 대로 미술실에 가서 그림 그리기를 한 시간 한 뒤 귀가하는’ 조건부 입학이었다. 더하기 빼기, 자기 이름 쓰기 같은 시험에는 떨어졌으나 그림 하나만은 아주 잘 그리는 어린이로 인정되면서 그런 조건부 입학이 이뤄진 것이다.

학교수업이 끝나는 대로 집에 가 마음껏 노는 줄 알았다가 나는 그럴 수 없는 처지에 해당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얼마나 맥이 풀렸던지! 그뿐 아니다. 그런 미술반 활동을, 4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이사 간 홍천의 홍천초등학교에서도 잇게 됐으니, 결국 초등학교 시절 6년 내내 한 셈이다. 이때의 고달픈 경험을 먼 훗날 소설로 써서 지면에 발표했으니 내 첫 번째 작품집에 실은 <그분을 기억한다>와 《춘천문학》 31호에 게재한 <미술반>이 그것이다. 

홍천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다시 춘천으로 이사와 춘중에 입학했다. 1학년 때는 무심코 미술반(특활부서)에 들어갔으나 ‘이제는 아무도 내게 미술반 활동을 강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2학년 때부터는 문예반에 들어감으로써 기나긴 미술반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른 반도 아닌 문예반에 들어간 건, 어처구니없지만, 하교해 집(단칸셋방)에 가도 딱히 재미난 일이 없어 방 한 편에 쌓여 있는 아버지의 책들을 읽어 보게 되면서 문학에 흥미를 느낀 결과다.

요즘처럼 TV나 컴퓨터가 있었더라면 아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단칸셋방을 1년에 한 번꼴로 이사 다니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現代文學》을 빠트리지 않고 매달 구입했다. 내가 ‘현대문학’이라고 한글로 쓰지 않고 굳이 한자로 쓰는 까닭은 그 책 표지에 그렇게 한자로 쓰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한자를 전혀 읽을 줄 몰랐던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내게 ‘현대문학’은 ‘現代文學’으로 뇌리에 각인돼 있다. 

아버지가 윗대로부터 물려받아 하던 사업(종이를 만드는 ‘반도제지’ 공장 및 회사. 효자동에 있었다)이 무너지면서 편치 않은 심정을 달래려 했는지, 어려운 단칸셋방살이 속에서도 《現代文學》을 비롯한 문화예술 관련 책들을 부단히 구입해 보던 것이다.

《現代文學》에는 갖가지 글들이 실려 있었는데 그 중 나는 소설이 제일 재미있었다. 지어내는 스토리의 맛에 깃들여졌다고나 할까, 열심히 소설을 찾아 읽었다. 가끔씩 남녀 주인공들의 육체적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이 나오면 내가 너무 어린 탓에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요즘 말로 ‘대략난감’한 채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춘중 2학년 때 문예반에 들어간 것이다.


이병욱은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중학교, 춘천고등학교,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도내(道內) 인문계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서 30년간 근무 후 소설을 쓰고 싶은 갈망에 2004년 2월 명퇴, 2016년 첫 작품집 《숨죽이는 갈대밭》에 이어 2018년 두 번째 작품집 《K의 고개》 발간. 현재 지난 70년대 춘천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집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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