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태 (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영화 <미나리>로 우리가 잘 아는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민자 가족의 애잔한 삶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펼쳐 내는 데 한몫한 윤여정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오스카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의 수상소감과 인터뷰도 연일 화제다. 윤여정은 배우라면 모두 꿈꾸는 꿈의 무대인 아카데미상 수상을 하면서도 겸손하면서도 담대한 수상소감을 통해 특유의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의 수상소감은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영화 못지않은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가꾸어 나가야 할 마음과 태도가 연이은 수상소감에 잘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 소개한다.

“우리가 촬영할 때 어디에 있었어요?”

윤여정은 수상의 기쁨에 좌우됨이 없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주목하는 시상식 자리에서 영화의 제작자가 있었던 곳을 물었다. 그 제작자는 우리가 잘 아는 헐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였다. 헐리우드에서 브래드 피트가 가지고 있는 입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보통의 배우, 특히 헐리우드에서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얻기 힘든 동양인 배우라면 브래드 피트에게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여정은 이 거대권력을 가진 제작자에게 오로지 배우의 입장을 가지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무엇을 했냐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돈을 대주는 일이 전부가 아니지 않느냐, 이제껏 어디에 있다가 오스카상 시상식에 와서 얼굴만 비추냐고 묻는 것이다. 권한에는 책임이 함께 동반되어야 하는 것임을 말하는 배우의 수상소감에 영화사 사장은 멋쩍은 웃음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가 고용한 사람이었을 뿐 결코 브래드 피트에 종속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최고가 아닌 최중이 되자”

윤여정은 “나는 최고(最高), 경쟁 그런 말 싫다. 1등이고 최고가 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데 모두 다 최중(最中)이 되고 같이 동등하게 살면 안 되나”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오스카상 받았다고 윤여정이 김여정이 되는 건 아니라는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윤여정이 영화와 드라마, 예능을 넘나들며 젊은이들과 호흡을 맞추어 낼 수 있는 힘은 바로 그의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력과 용기에 있지 않았을까.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우리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옥죄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불안감은 우리의 영혼을 서서히 잠식한다. 배우 경력의 봉우리에 선 배우가 <미나리>의 할머니가 되어 나지막이 말하고 있다. 내가 딛고 서 있는 건 그저 고갯마루일 뿐이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바다를 보여 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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