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화(춘천여성민우회 감사)
김효화(춘천여성민우회 감사)

그 여자는 장사‘꾼’이다. 손님이 한번 들어왔다 하면 두세 벌은 순식간에 판다. 달변이 따로 없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 스타일에 따라 옷을 척척 꺼내어 맞춰 준다. 예쁘다, 멋있다는 립서비스는 자연스럽다. 그 여자네 가게에 들어선 후 지갑을 열지 않는 손님은 웬만해선 없다. 시장에선 여우같이 장사 잘하는 여자로 소문나 있다.

그 여자가 장사를 시작한 지 벌써 18년. 아이들 3~4살 때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성인이 됐다.

여자는 매서울 정도로 부지런스럽다. 매일 새벽 6시면 일어나 집을 치우고 요리를 시작한다. 엄마가 없다 해도 아이들이 든든하게 저녁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를 그득그득 채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집안일을 마저 하고 가게로 출근한다. 그 여자는 하루 8시간 넘게 혼자 점포를 지키며 손님을 응대한다. 저녁 8시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고 퇴근한다.

그래도 요즘은 시대가 좋아졌다.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 도매시장 제품을 확인하고 사입 삼촌을 대신 보내 제품을 받아 올 수 있다. 몇 해 전까지만도 옷 가게 사장들은 신상품 구매를 위해 시장에 직접 올라가야 했다. 그 여자도 그랬다. 가게 문을 닫고 서울로 내달려 동대문시장을 몇 시간 동안 쏘다녔다. 동대문 상가들이 문을 여는 밤 11시께부터 상가를 돌다 보면 새벽 3~4시가 되어서야 구매가 끝난다.

밤공기 맡으며 옷 먼지 날리는 의류상가를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다 보면 눈, 코, 입이 아프고 따갑다.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옷 가방은 자기 몸보다도 더 커져 있다. 그걸 몇 개씩 들쳐메고선 자동차까지 몇 번 더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제품을 다 싣고 춘천으로 돌아오면 새벽 6시. 시장에 다녀오는 날에는 잠을 잘 수 없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여자는 집을 치우고 요리를 시작해야 한다.

“평생을 그러고 살았어요.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종종거리며 집안일 하고 애들 키우며 장사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될 정도예요.”

중앙시장이나 춘천지하상가와 같은 시장을 둘러보면 소상공인의 70% 이상이 여성이다. 남성이 사업자일 경우에도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점포의 대부분을 여성들이 지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 소상공인들의 삶은 대개 그 여자와 비슷하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가사노동과 육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여성 소상공인들은 1인 점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경기와 최저임금인상으로 직원을 고용하지 못하면서 1인 점포로 운영하는 사례가 더 늘었다. 이들은 제품 사입부터 재고관리, 회계, 세무, 인테리어, 점포관리 등 가게 운영에 관한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한다. 더구나 1개월에 1회의 휴일밖에 없는 시장이나 상가에서 온전히 쉬지도 못하고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다.

여성 소상공인, 그 여자들의 하루는 매일 가사노동과 육아, 영업과 점포관리라는 ‘업무’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하루 중 18시간 이상을 휴식 없이 바들짝거린다. 중년을 지나면서 각종 관절통과 위장 장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성 소상공인들은 ‘사장’, ‘사업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에 인권의 영역에서 종종 소외되어 왔다. 그 여자들의 무겁고 힘겨운 삶은 개인의 영역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 여자들은 각자의 점포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홀로 삶의 무게를 감당해 왔다.

그러나 그 여자들의 삶에 이제는 노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똑똑! 얼마나 힘드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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