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놀고 있네”라는 말을 들으면 십중팔구 기분이 상한다.

상대방의 언행과 상황을 비꼬는 말로써, 노는 문화를 성장의 걸림돌로 치부하며 부정적으로 대하는 한국의 풍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산업화에 동원된 중장년 세대, 진학과 취업의 전쟁터에 내몰린 청소년과 청년 세대에게 한국 사회는 ‘놀이’보다 ‘노동’을 강요해 왔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자 상황이 바뀌고 있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더 잘한다며 일하기를 놀이처럼 즐기라는 기업이 늘고 있고, 손가락질받던 ‘베짱이’는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조적인 존재로 재평가받고 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인 요한 호이징가는 이미 오래전 명저 《호모루덴스》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규정하며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희를 추구하며, 문명의 원동력은 놀이라는 것”이다. 뇌 과학에서는 어떤 행동을 할 때 활력과 행복의 호르몬인 도파민이 풍부하게 분비되는 상태를 ‘놀이’라고 하고, 그 상태를 촉진하는 건 ‘새로움’이다.

모든 지자체가 공동체의 발전과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서 고민하고 있다. 일자리·주거·교육 등 산적한 숙제가 끝이 없다. 기존에는 큰돈을 쏟아부어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거나 큰 건물을 짓는 것부터 시작했다. 화려한 수사로 포장하고 과장된 효과를 홍보하며 파헤치고 짓는다. 하지만 장밋빛 약속은 사라지고 논란과 갈등을 빚어 낸 사례는 손이 모자랄 만큼 넘친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베짱이’가 주인공인 4차 산업혁명 시대, ‘놀이’에서 공동체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까? 창의력이 성공의 필수요인이라는 시대, 창의력은 바로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놀이’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밝은 미래는 잘 노는 구성원에 달렸고, 공동체의 책임자들은 구성원이 잘 놀 수 있게 판을 깔아 줘야 한다.

다행히 춘천에서 그런 희망의 싹이 보인다. (사)강원살이는 ‘청년이 떠나지 않고 살기 좋은 춘천은 나답게 놀 수 있는 곳’이라며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고, 춘천문화재단은 ‘춘천놀이’·‘도시가 살롱’·‘일당백 리턴즈’ 등을 선보이고 있으며, 청년청의 ‘청춘클라스’는 청년을 위한 다양한 취미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있다. ‘담작은 도서관’은 전통적인 도서관에서 탈피해 소음도 허락된 책 읽는 놀이터이다.

특히 ‘어린이통합예술교육’과 ‘잼잼놀이터’가 눈에 띈다. 전자는 초등 어린이들이 학교 수업시간에 놀이하듯 예술을 활용해 주요 교과를 배우는 수업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밖에서 축소되어 진행됐다. 올해 드디어 10개 초등학교에서 본격적인 수업이 진행된다.

후자는 어린이는 모험(위험)을 통해 자유롭게 상상하며 창의력이 자란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어린이가 설계와 감리에 참여해 만들어진 어린이들이 원하는 놀이터다. 아이들은 강요된 놀이와 딱딱한 수업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낸 놀이와 학습을 하며 행복한 몰입을 체험하고 있다. 한마디로 창의력을 갖춘 미래 시민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자라나 책임 있는 리더가 된다면 중도(中島)를 파헤치는 것 같은 결정을 하지 않으리라. 성장을 위한 다른 길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지나친 낙관이라고? 성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고? 아니다. 실패한 정책으로 망가진 자연을 되돌리는 시간보다 훨씬 적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그 효과도 훨씬 크다. 살기 좋은 춘천? 잘 노는 시민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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