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사단법인 강원민주재단 이사장)

다시 오월이다. 그해 이후 내내 봄은 괴로운 계절이다. 그날의 상처는 넓고도 깊어 41년의 세월도 이를 치유하기에는 짧기만 하다. 그해 군부는 정권을 찬탈하면서 수많은 학생, 지식인, 시민들을 구속했고 교수, 언론인을 거리로 내쫓았다. 급기야는 시민에 대한 학살을 자행했다. 그해 광주는 철저히 고립되었다. 사람도 물자도 소식도 오가지 못했다. 그러한 고립 속에서 광주시민은 서로를 위로하고 북돋고 지탱하고 의지하면서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립된 항쟁기간중 광주에서는 어떠한 범죄도 발생하지 않았고, 모두를 위한 밥을 짓고 나누면서 숭고한 연대의 공동체를 이루어냈다.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입하던 날, 밤하늘에 울려 퍼지던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는 호소에는 고립되어 항쟁에 나섰던 광주시민의 외로움이 절절히 배어 있다.

그해로부터 41년이 지났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접선거 등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어냈으며, 같은 해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조건의 개선을 이루어냈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었고, 2006년 광우병 촛불로 권력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마침내 촛불은 2017년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시민이 이 나라의 주권자라는 사실과 근대적 민주주의의 출발을 선포하였다.

그렇다. 멀리는 임정의 선구자들이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100년 이래, 가깝게는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한 60년 이래 대다수 국민의 염원인 민주주의의 정치적 메커니즘은 얼추 갖추게 되었다.

이렇듯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하면 국가의 폭력은 사라질까?

인류 최악의 범죄자 히틀러도 당대 독일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 아일랜드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3천600명이 희생되었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1970년대 민주주의의 나라라 일컫는 영국에 의해 자행된 일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지난 미국 대선과정에서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가 폭력을 선동·조장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미얀마에서는 민주주의의 확대 과정에서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린 군부에 의해 700명이 넘는 시민이 학살되고 있다. 선진민주주의 국가라 일컫는 많은 나라에서도 국가의 폭력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우리라고 다를까? 2009년 용산참사가 철거민들의 저항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주요 정치인으로 있는 한 국가의 폭력은 언제든지 부활할 수 있다.

폭력의 대상과 방식이 달라질 뿐 합법적 무력을 독점한 국가라는 체제가 존재하는 한 폭력의 위험은 상존한다. 공동체의 가장 큰 울타리로서 국가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내재하는 국가폭력의 위험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국가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희생자를 기리고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기념물을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합법적인 폭력은 국가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자본과 시장은 신자유주의, 경영합리화, 구조조정이라는 허울 아래 이윤극대화를 위해 공동체의 약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19살 소년 노동자가 죽어가고, 발전소의 컨베이어벨트에서 23살 청년노동자가 죽어가고, 택배물류창고에서, 건설현장에서 해마다 2천여 명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다. 매년 세월호 7척이 침몰하고 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생존권을 담보로 위험한 일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폭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와 자본의 폭력은 사회의 약자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비극성을 더해준다. 국가와 자본은 학력과 소득, 지역, 성별에 따라 우리를 갈라치고 경계를 만들어 약자들을 그 경계 너머에 머무르게 한다. 최저임금에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 작업가방에 컵라면을 남기고 죽어간 소년노동자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우리가 과연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을까? 대기업 노조가 사내하청과 비정규직에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을까?

국가폭력이 과거만의 일이 아니며 자본과 시장에 의한 폭력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그 모든 폭력에 의하여 사회의 약자가 변방으로 떠밀리고 경계에서 쫓겨나 공동체의 바깥에서 극단적인 경우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약자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고, 아무도 차별의 아픔을 겪게 하지 않는 것, 누구도 공동체의 경계 밖에서 외로이 머물지 않게 하는 것. 연대와 상생의 공동체 정신. 

광주민주항쟁 41주년에 새겨보는 5·18정신이다.

민주주의의 길은 끝이 없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