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봉의고 국어교사)

내게는 숨겨둔 보물 같은 수업이 하나 있다. 함께 시를 읽고 내용에 대해 토론하며 화자(話者)의 마음과 상황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간. 고등학교 1학년부터 심지어 어른까지 이 수업은 실패한 적이 없다(교사라면 다 알겠지만 아무리 신나게 이야기해도 한없이 지루해하는 학생의 표정을 볼 때 ‘실패’라는 단어가 자꾸 둥둥 떠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할 때 늘 신이 난다. 새 학기가 되면 올해는 언제 이 수업을 해볼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업은 이렇게 진행된다. 모둠을 구성한 뒤 박성우 시인의 <두꺼비>를 건네주고 빈칸에 들어갈 시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시 안에서 근거를 찾아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

“아버지는 두 마리의 두꺼비를 키우셨다 / 해가 말끔하게 떨어진 후에야 퇴근하셨던 아버지는 두꺼비부터 씻겨 주고 늦은 식사를 했다 동물 애호가도 아닌 아버지가 녀석에게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나는 녀석을 시샘했었다 (중략) 아버지는 지난 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 / 내 아버지 (     )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

마지막 행 빈칸에 들어갈 말을 찾기 위해 아이들은 다양한 의견을 낸다. 시를 가운데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교실은 세상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이들이 제시한 시어 모두 틀린 건 아니라고 말하며, 시인이 선택한 시어는 ‘양 손’이라고 알려준다. 오랜 시간 함께 의견과 감상을 나눈 후 답을 찾아야 하는데 지면에 싱겁게 밝히게 되어 아쉽다. 아이들은 시어를 찾은 후 수수께끼 같은 구절들이 그제야 풀리는 것에 감탄한다. 조명과 배경음악까지 준비한 뒤 낭송하게 하면 몇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수업은 ‘함께 읽기’의 힘이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시대, 그 안에는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정보가 있지만, 화면의 꺼짐과 동시에 휘발되어버리기도 한다. 반면 독서는 바로 답을 주지 않는다. 1백명에게 1백개의 해석과 이미지를 던져준다. 같은 책도 누군가에게는 감동을 누군가에게는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열려 있음’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책은 읽고 나면 잊어버린 것 같다가도 우연한 시공간에서 불쑥 존재감을 뽐내며 우리 삶에 동반하고는 한다.

시나 소설, 에세이 같은 문학은 특히 그러하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과 문학으로 만난 첫날,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지 아이들의 생각을 물었다. “문학이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가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는 눈, 낯선 장소의 향기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글, 글로 그린 그림, 쉽게 들어갔다가 오래 머무는 곳, 살면서 한 번쯤은 꼭 만나게 되는 것”이라 답했다. 고3 아이들이 내린 문학의 정의는 어떤 책의 구절보다도 눈물겨웠다.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미쳐야 미친다’와 같은 살벌한 급훈이 걸려 있는 고3 교실. 스트레스와 불안과 피로를 안고 사는 우리에게도 문학은 필요하다. 문학에 대고 굳이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다섯 개 중 골라내라는 못할 짓을 하고 있지만, 함께 문학을 배운 시간을 오래 기억하기를 바란다. 봄이 스며드는 교실, 시를 낭송하자 둘러싼 공기가 조금 달라진 것을 우리는 분명 함께 느꼈다.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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