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DJ 최인의 디스크자키 이야기 (2)
[문화살롱] DJ 최인의 디스크자키 이야기 (2)
  •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 승인 2021.05.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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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자키(Disc Jockey)’의 어원과 의미

1935년 미국의 언론인이자 방송인이었던 월터 윈철(Walter Winchell)이 만들어낸 단어로, 이미 녹음된 축음기용 레코드를 뜻하는 Disc와 기계를 다루는 사람(Operator)이란 뜻의 Jockey를 합쳐서 만들어낸 합성어이다. Disc Jockey(이하 DJ)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은, 라디오 쇼 ‘Make Believe Ballroon’의 스타 아나운서 마틴 블록(Martin Block)이었다. 당시 그는 레코드와 세계적인 Top Class 밴드의 라이브 방송을 하는 댄스홀 뮤직 진행자로 명성이 높았다(‘Disc Jockey’는 영어이고, ‘Disk Jockey’는 미국의 관용영어 표현이다).

DJ라는 단어를 최초로 썼던 스타 DJ 마틴 블록(Martin Block)

오늘날 DJ는 AM·FM 라디오, 위성이나 인터넷방송 등에서 음악에 코멘트를 곁들여 테크니컬하게 진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클럽, 힙합과 이동 DJ, 나이트클럽이나 댄스홀, 디스코클럽, 야외 라이브공연이나 이벤트 파티 등에서 레코드음악을 재치 있게 진행하는 사람을 통칭하기도 한다. 

스타 DJ의 탄생과 삶 (1)

최초의 진정한 스타 DJ 마틴 블록(Martin Block, 1903~1967)

‘Disc Jockey’라는 용어를 최초로 쓴 인물로도 알려진 그는 여행사 세일즈맨 출신으로 여러 방송사를 전전하다가 1934년에 뉴욕의 작은 라디오 방송국 ‘WNEW’에 정착했고, 1935년 2월부터 시작된 그의 방송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스타 DJ로서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한편 1932년부터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는 알 자비스(Al Jarvis)가 ‘KFBW’의 DJ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원조 DJ 앨런 프리드(Alan Freed, 1922~1965)

미국 로큰롤 DJ의 원조로 불리는 앨런 프리드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1950년대 ‘로큰롤’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그는 ‘문독(Moondog)’이란 별명으로 흑인들의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와 백인들의 컨트리뮤직을 라디오와 라이브 공개방송에서 적절히 안배해 틀며 로큰롤을 태동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DJ라는 직업을 연예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이었다. 그는 시카고, 뉴욕, 플로리다까지 옮겨 다니며 인기를 누린 스타 DJ였다. 그러나 결국 앨런 프리드의 인기는 한순간에 날아가고 말았다. 1960년대 초, 페이올라(Payola, 방송뇌물) 사건에 휘말려 인기의 권좌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일설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제대 후 <Be-Bop-A-Lula>로 스타가 된 진 빈센트나, <Summertime Blues>로 유명했던 에디 코크란의 매니저에게서 받은 뇌물이 화근이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1963년 그는 소송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얻어내기는 했지만 그의 인기는 이미 쇠진된 후였다.

결국 그는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간경화증으로 1965년 43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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