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난생처음 춘중 2학년 때 문예반에 들어갔지만, 딱히 기억나는 활동은 없었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었다. 이때 문학적인 사건이 생겼다. 그 내용을 써놓은 게 있어 소개한다.

1966년 봄날에 춘천에서 ‘제1회 개나리 문화제’가 열렸다. 행사의 일환으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이 열렸고, 뜻하지 않게 나는 시(詩) 장원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뜻하지 않게”라는 표현을 쓴 건 영문도 모르고 백일장에 참가한 때문이다.

당시 나는 춘중 3학년 학생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수업은 걱정하지 말고 글짓기 대회에 다녀와라”고 갑자기 외출(?)시킴으로써 얼결에 이뤄진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장원으로 뽑힌 내 시의 제목을 기억한다. ‘산길’이었다.

난생처음으로 국어사전까지 부상으로 받는 영광의 날, 며칠 후 아주 젊은 선생님이 나를 찾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3학년 국어를 맡은 선생님이라 했다. 3학년이 8개 반이나 돼 국어 선생님 두 분이 4개 반씩 맡아 가르쳤는데 다른 반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네가 이번에 시에서 장원한 이병욱이냐?”

선생님은 그렇게 나를 확인한 뒤 이렇게 말을 이었다.

“시 공부를 하면 좋은 시인이 될 것 같구나. 내가 아는 시인이 한 분 있는데, 네 시 공부를 부탁해놓을 테니까 앞으로 토요일 오후에는 학교에 남아야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무실을 나왔다.

토요일 오후가 됐다.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깜빡 잊은 척하고 귀가해버렸다.

아마 선생님이 우리 반 국어를 가르치는 분이었다면 당장 그다음 주 월요일 수업시간에 나를 보는 대로 야단을 쳤을 게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한테 국어를 배우는 학생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냥 넘어가버리고 말았는데… 어쩌면 “이런 맹랑한 녀석은 일찌감치 포기해버리자”며 알아서 단념해버렸을지도 몰랐다.

사실 내가 감히 선생님의 호의를 외면한 건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뒤에 따로 남아 하는 특별활동’에 마음의 상처가 깊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년간 매일같이 학교에 남아 미술반 활동을 했던 고된 경험이 그것이다. 여하튼 그 바람에 선생님과 소중한 인연이 시작될 뻔했다가 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그 선생님이 ‘전상국 선생님’이라는 사실. 그때 내가 말씀대로 ‘토요일 오후에 따로 남아’ 시 공부를 했더라면 일찍 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소설가 전상국

1940년생, 경희대 국문과, 동대학원 졸업, 강원대 명예교수.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동행>이 당선되어 등단. 작품집으로 ≪바람난 마을≫, ≪하늘 아래 그 자리≫, ≪아베의 가족≫, ≪우상의 눈물≫ 등과 장편소설 ≪늪에서는 바람이≫, ≪불타는 산≫, ≪길≫, ≪유정의 사랑≫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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