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 이사장)

육아기 자녀를 둔 엄마들은 정신이 없다. 나도 그렇다. 아침이면 코로나19 자가진단 앱을 켜서 등원이 가능하다고 체크하고 10살 아들을 깨운다. 무사히 초등학교를 보내면 38개월 둘째 차례다. 모두를 보내고 출근을 하면 모닝커피 한잔에 버퍼링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아들 둘을 키우는 40대 활동가 엄마다. 첫아이 임신 9개월까지 서울에 대학원을 다녔고, 출산 직후 마더센터 창립총회 자료를 만들고 언니들과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둘째를 출산하고 6개월의 시간을 가지리라 마음먹었지만 어쩌다 보니 모유수유를 황급히 끝내고 출산 4개월 만에 일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하지만 나는 대단하지 않다. 나에게는 모두가 부러워할 여성주의 공동체가 있다. 안절부절 아기를 맡길 곳이 없을 때, 나보다 포대기를 아주 잘 메는 언니들이 아기를 봐줬다. 친구, 동생들까지 돌아가며 봐주기도 하고 나의 파트너(남편)도 아기는 볼 테니 다가오는 기회는 잡으라고 이야기한다. 첫아이가 생후 6개월일 때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던 기억은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 아스라한 새벽 공기와 구름이 지상에 내려앉은 듯한 산속 도로를 하염없이 거닐었던 기억들. 그곳에서 삶의 충만함을 느꼈다. 나는 두 명의 아이를 키워내며 여성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선입견 없이 들어줄 공동체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내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도모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지지하고 감싸주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었지만 고군분투하는 독립된 개인, 나를 위한 공동체 말이다.

이스라엘의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는 《엄마됨을 후회함》(2016, 도서출판 반니)이라는 책을 출간해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책에서는 엄마들이 겪는 부정적 감정에 대한 서사가 담겨 있다.

엄마들은 아기를 출산하면서 인생에 몇 안 되는 생경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낯설고 이질적이고 불안한 경험들. 물론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안도감, 내 자식을 바라보는 충만한 행복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하는 부정의 감정들도 이야기하고 싶다.

온전히 고독하게 받아내야 하는 돌봄노동의 고립감. 나 자신이 사라져버린 듯한 우울함. 그러나 엄마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발설’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모성으로 빛나는 엄마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도 달라진 엄마/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다.

여성으로서 받았던 다양한 차별들이 엄마가 되면서 옵션이 추가되어 손발이 묶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기혼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과 고립에 맞서 춘천여성협동조합 마더센터를 만든 지 햇수로 9년째가 되었다. 400명이 넘는 조합원들과 SNS 비공개 조합원 밴드를 통해 340여 명이 소통한다. 초등학교 자녀가 커가면서 여성을 혐오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젠더 갈등을 목격하고 성평등강사단 양성과정을 만들고 강사를 파견했다. 불안정한 초등돌봄을 해결하고자 초등학교와 인근 작은도서관, 마을공동체 모임과 연합해 돌봄공간 ‘뚜루뚜’를 만들었다. 50대 완경기 여성들의 서로돌봄을 위해 몸살림과 치유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우리의 공동체는, 나로부터 시작한 바닥끝의 어둠을 끌어내어 해소하고 새롭게 조직해나간다.

‘엄마’라는 말이 주는 고정적인 이미지들. 자기희생, 숭고함, 푸근함, 고향, 집반찬, 집.

21세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엄마는 없다. 그렇게 바라보고 재현되었으면 하는 당신의 생각만 있을 뿐이다. 엄마는 당신과 같은 독립된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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