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와인이 좋은 와인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나는 “맛있는 와인”이라고 대답한다. 단 한 가지 “저렴하면서”라는 단서를 붙인다. 세칭 전문가라서 무슨 뾰족한 대답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좀 실망스러운 대답일 수도 있다. 그 실망감을 좀 줄여볼 목적으로 오늘은 그 ‘맛’과 ‘저렴’의 공존을 이야기해본다.

와인은 묵직한 바디감, 깊거나 상큼한 향, 적절한 산도와 부드러운 목 넘김이 어우러지며 균형 잡힌 밸런스, 마신 후에 길게 남는 여운 등으로 퀄리티를 가늠한다. 와인은 이런 여러 요소들을 단시간에 변화시킬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른 술에는 많지 않은 특성이다. 이걸 잘 살리면, 당연히 한계야 있겠지만, 기대했던 것 이상의 맛으로 즐길 수 있다.

사진 출처=프리픽

에어링(Airing, 일명 디캔팅)이라는 마법이다. 프랑스의 5대 그랑크루나 세계적인 고급 와인들은 대개 제조연도로부터 12년에서 15년 사이에 마시는 것이 상식이다. 파리의 와인 매장에 가면 고급 와인의 경우는 언제가 맛의 정점인지 연도를 표시해준다. 와인을 눕혀 코르크가 젖게 만들어 저온에 보관시키는 이유도 최고로 잘 숙성된 풍미를 얻기 위함이다.

와인오프너 중에 ‘라귀올레’라는 이름과 매미가 붙어 있으면 누구나 명품 중 하나로 꼽는다. 이 회사가 20여 년 전에 생산한 디캔팅 메달이라는 상품이 있다. 지름이 5~6mm에 달하는 아주 작은 원안에 구리 합금인 듯한 금속으로 매미 한 마리가 양각되어 있다. 설명에 따르면 요 매미를 와인 잔에 1~2초만 넣었다가 빼내면 그때마다 1년 정도 숙성이 된 맛으로 변한다고 한다. 실험해보면 확실히 근거가 있다.

와인을 숙성시킨다는 말은 산화시킨다는 뜻과 같다. 이걸 집에서도 손수 할 수 있다면 10년을 기다릴 필요도 없을뿐더러 좀 부족한 와인을 사서 적절히 산화시켜 풍부한 맛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본다. 내 경험으로 보면 우선 화이트와인이 잘 반응하고 그 중에 ‘샤도네이’라는 포도 품종을 쓴 와인이 말을 잘 듣는다.

1만원 정도의 화이트와인이되 품종이 ‘샤도네이’라고 표기된 와인을 고른다. 이런 와인들은 대부분 제조연도가 1~2년 미만의 미숙성 와인들이다. 그리고 디캔터를 준비한다. 꼭 비싼 것을 구입할 이유는 없지만 너무 싼 것은 선택하지 말 것을 권한다. 이게 싸구려 크리스털이나 불량 유리로 만들어진 경우, 와인과 반응해서 원치 않는 물질이 생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와인을 열어 디캔터에 넣는다. 그리고 한 5~6바퀴 정도 돌려준다. 너무 많이 흔들면 고개를 넘을 수 있으니 적당히 멈춘다. 그리고 위를 막지 않은 채 냉장고에 넣어둔다. 마시기 30분 전쯤에 작업해두는 것이 좋다. 보통 화이트와인은 고급이라도 5년 이내의 숙성을 원칙으로 한다. 잘 산화하는 성질 때문이다.

이렇게만 해서 마셔도 1만원짜리가 배 이상의 가성비 괜찮은 와인으로 변한다. 직접 실험해볼 것을 권한다. 확실한 결과를 위해 2병을 사다가 비교해보자. 웬만한 미각이면 즉시 구별할 수 있다.

이런 원리는 옛날 우리 조상들께서 즐기셨던 청주를 놋쇠 주전자와 놋쇠 잔에 마셨던 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놋쇠 합금이 신통하게도 숙취 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중화시킨다. 이런 걸 어찌들 아셨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가끔 전통주를 담가 마실 때면 필히 청주를 먼저 떠내고 방짜 주전자와 잔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홍성표(전 한국와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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