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자 (석사동 주민)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동과 동 사이엔 정자가 하나 있다. 그 정자의 주인은 낮과 밤 따로 있다. 낮에는 여성 어르신들의 사랑방이고, 저녁엔 학원 가기 전 운동기구를 놀이기구 삼아 흔들며 함께 갈 친구를 기다리는 초등생 친구들 차지이고, 밤에는 흡연장소를 찾는 애연가들 차지다. 작은 정자의 쓰임새치고는 쏠쏠하다.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 정자는 여성 어르신들의 나들이 장소였다. 그들은 집집에서 밥 한 공기와 찬 몇 가지씩을 들고나와 모여앉아 매일매일 소풍을 즐기셨는데, 요즘은 식사는 나누지 못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벤치에 앉아 거의 하루를 함께 보내신다. 원래 오랜만에 만난 친구보다 매일 보는 친구와 할 말이 더 많다더니 어르신들은 사이좋게 보기 좋게 함께 나이를 드신다. 우리 아파트 정자는 그들에게 사랑방이고 노인정이고 놀이터고 복지관이다.

나는 아흔이 훌쩍 넘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작년 2월까지 동부노인복지관을 매일 셔틀버스를 타고 누구의 도움 없이 다니셨다. 거기서 장기도 두시고 점심식사도 하시고 친구분들과 하루를 보내며, 직장인들이 출퇴근하듯 복지관 오고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우리 동네엔 아버지 친구분이 안 계신다. 아버지는 우스갯소리로 “내 친구는 다 죽었어, 다 산에 가 누워 있어”라고 하시지만 웃을 수가 없다. 하루에 두 차례 외출복을 갈아입고 아파트 건물을 두세 바퀴 돌아오시는 게 운동이자 외출이다. 몸이 불편하지 않으면 거의 규칙적으로 나가시기 때문에 우리 동네 사랑방을 지키는 어르신들이 아버지가 며칠 안 보이면 지나는 내게 혹시 아버지 어디 편찮으시냐고 물으신다. 아버지가 요즘 거의 한 달 바깥출입을 못 하셨는데 301호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했다며, 날 보시더니 아버지 안부를 재촉하신다. 아버지 친구분이 여기 계셨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노인 한 분을 돌보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다.

작년 2월 22일 춘천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지 벌써 15개월째다. 학교에 매일 못 가는 어린 친구들 이야기는 가끔 미디어에 기사로 나오지만, 복지관 경로당 노인정이 닫혀서 각자의 공간에 갇힌 어르신들의 고독과 외로운 단절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코로나19에 걸리거나 예방접종 후 부작용으로 돌아가셔도 그저 기저질환자 또는 고위험군이라 다행이란 식으로 언급될 뿐이다. 신체기능이 점점 불편하고 퇴화할수록 사회적 소통에서도 멀어진다.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처방약을 오랜 기간 드시고 나면 가끔 낮과 밤도 구분 못 하시고 이명현상도 있고 하면 본인도 이상증상을 인지하곤 불안해하며 부쩍 우울해하신다. 이럴 땐 약도 소용이 없다. 기분전환을 해드려야 하는데 차를 타고 들판이 보이는 곳을 한 바퀴 돌며 감자 싹이 많이 자란 풍경이나 농사 준비로 잘 정돈된 모습을 보며, 일 년 농사 얘기를 풀어놓으시며 잠시 몸이 불편한 걸 잊으신다. 물론 멀지 않은 고향 방문을 제일 좋아하시고 고인이 된 고향 사람들을 한 분씩 소환하며 말씀하실 때는 표정이 확 달라진다. 약 한 알보다 이런 정서적 유대 효과가 훨씬 좋다.

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너희 엄마 가고 곧 따라갈 줄 알았다”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아버지 세대는 얼떨결에 100세 시대를 맞이했지만 우리 세대는 어떤가? 아버지처럼 100세를 산다면 얼떨결이 아니고 그럴 수도 있음을 알고 있는 우리는 치매보험, 간병인보험 열심히 붓는 게 다일까?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회색 병동으로 변하고 있는데 복지정책이 따라올 수 있을까?

우리 동네 정자에서 서로 안부를 챙기며 밥도 나누고 맘도 나누는 여성 어르신들처럼, 멀리 있는 복지정책에 기대거나 요양원에 가기보다는 차라리 마을 안에서 서로를 돌보는 생활돌봄으로 나의 노후대책을 꿈꾸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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