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시장경제든 계획경제든 핵심은 분배다. 오래전부터 북유럽 사민주의로 익히 불려왔지만, 지구촌 많은 국가에서 사회모순 분배모순에 대해 일정 부분이라도 해법을 찾기 위해 혼합경제체제를 채택하는 흐름이다. 어떤 체제를 막론하고 그 흐름을 주도하는 주체가 시민대중이 아니라 국가권력 또는 자본권력, 그도 아니면 국가와 자본이 야합한 기득권력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디테일을 논박하려 한다면, 이러한 주장 또한 비판 또는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2021년 2월 19일 노동자의 벗이었던 백기완 선생의 하관식이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전태일 곁에 나란히 누워 영원한 잠에 들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아니다 노나메기 잊지 마라

부디 노나메기 잊지 마라 훈수는 남겼구나

목숨 걸고 싸우라, ‘묏비나리’ 훈수는 남겼구나

춘강의 詩 <훈수> 中 일부 인용

노나메기란 다름 아닌 공평하게 나눠 먹기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분배의 정의와 같은 말이다. 만약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분배가 공평무사한 사회라면,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아귀다툼 벌이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마치 전쟁 같은 참극이 벌어질 필요가 있기나 하겠는가. 그러니 노나메기란 곧 평등 평화와 이음동의어다.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이 발동할 때 노나메기는 가능해진다. 약자끼리 서로에 대한 공감 능력이 커지면, 약자를 억압하는 권력과 자본을 향한 분노도, 그 분노에 이어지는 투쟁도 그 연대의 힘을 배가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그 약자를 밟고 군림하는 권위에 대한 분노, 그리고 투쟁, 이 두 가지가 노무현 정신의 핵심이다.” 41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닷새 후인 5·23 노무현 10주기 즈음하여 ‘노무현 정신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간명하게 답한 유시민의 답변은 유효하고 또 명쾌하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다. 만약 말만 번지름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신하는 것이다.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검찰과 언론, 그리고 거기에 줄 대고 그들만의 만만세를 구가하던 자들이 “5·18 광주와 노무현 정신이 소수의 전유물이냐?”고 반문하며 자기들도 계승자의 자격이 있다고 항변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최소한 한번이라도 촛불광장에 나와 지난 과오를 반성한 적 있는가? 오히려 태극기를 몸에까지 두르고 거리로 나와 촛불을 폄훼하고 공격하지 않았는가? 

지난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구시대 반민주 반평화 냉전 기득권력이 안면몰수 절치부심 마지막 힘을 모으고 있다. 그 위력을 잠시 부는 돌풍 정도로 만만히 보면 안 된다. 연대연합 임전무퇴 결사항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역사의 수레바퀴는 눈 깜빡할 사이에 거꾸로 돌아갈 것이다. 거꾸로 돌아가 민주주의의 목줄을 짓밟고 피를 뿌리며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과연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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