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 (시인)

  “채영 씨, 커피를 안주 삼아 마시니까 좋죠? 좀 더 알딸딸한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술이 깨었다가 다시 취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알코올과 카페인 걔네들이 좀 그래요. 사람을 어디든 보내는 묘한 매력이 있죠. 한번 빠지면 중독된 것처럼 헤어나올 수 없고. 하지만 그러다 몸을 망쳐요. 둘 다 독한 것들이라 서로 부딪치면 사람을 아주 미치게 만들죠.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를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 한 사람의 몸속에 스며들면 짜릿한 황홀감은 있겠지만 그건 잠시이고 그 사람은 끝내 망가져요. 사랑을 다 가질 수는 없어요.”

최승랑 소설집 《추억의 습관》의 아홉 빛깔 사랑 이야기를 읽었다. 그 이야기들 중 <계절풍>에서 채영이 선택한 결말은 옳았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독한 것들’에 밑줄을 그었다. 세상의 불륜남녀들에게 전하는 이토록 따뜻한 경고라니. 어쩌면 두 고독한 고래를 동시에 사랑한 죄로 등이 터져 괴로운 새우에겐 더할 나위 없는 위로의 멘트일 수 있겠다.

모든 사랑을 응원했다. 비록 막장 같은 ‘위험한 사랑’일지라도. “모차르트는 아인슈페너에 럼주를 타 마시곤 했대” 말하며 맥심커피 알갱이를 안주 삼아 깔루아를 즐기던 당신과 “죽어가면서 레퀴엠을 쓸 때도 마셨을까?” 말하며 뜨거운 투샷아메리카노로 해장을 하던 당신의 애인. 두 가정의 아내와 남편이었다. 두 사람에게 다른 이들의 눈초리와 수군거림은 중요치 않았다.

나는 그때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던지는 욕망의 눈빛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유서를 내게 보내고 세상을 버렸을 때 당신의 애인은 울지 않았다. 얼마 후 당신의 애인이 또 다른 당신의 팔짱을 끼고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두뇌로 할 수 있는 모든 이해의 범주를 좁혀버렸다. 적어도 당신의 애인은 술과 커피를 동시에 들이붓는 짓 따윈 하지 않는 종족이었던 것을 당신과 나만 몰랐다.

중국 북서부에선 우박으로 사람이 여럿 죽었고 미국 중남부에선 야구공만 한 게 쏟아져 터전을 박살 냈다. 춘천에도 오월에 우박이 어지러이 쏟아졌다. 오랜 세월 언 채로 매달려 있던 슬픔덩이들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덜 슬퍼지려고 미치도록 애쓰는 사람들처럼.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고통스러울 거란 걸 깨달을 틈도 없이 막무가내로 조여 오는 악마의 언어들처럼.

스무 살의 나는 팔호광장의 카페 ‘흐름’에 앉아 있다. 테두리에 설탕을 묻힌 잔, 그 속에 담긴 검고 뜨거운 커피, 그리고 불붙인 브랜디 한 잔이 앞에 놓여 있다. 내가 주문한 건지 당신이 주문한 건지 알 수 없다. 그저 활활 타는 파란 불이 신기할 따름이다. 커피에 브랜디를 붓고 잔을 든다. 당신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의 눈동자.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당신의 그 눈동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