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 우르슐라 팔루신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비룡소

등산을 시작했다. 월요일에 쉬는 직업이다 보니 월요일을 어떻게 잘 쉬고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대다수의 월요일이 특별한 일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아깝게 느껴지던 차에 운동 삼아 뒷동산에 올랐는데 생각 외로 좋았다. 운전을 시작한 뒤로 흙을 밟았던 게 언제였던가. 오랜만에 밟아보는 푹신한 흙도 좋고, 누군가의 소원이 깃들었을 자그마한 돌탑들도 정겨웠다. 그날을 시작으로 산의 높이를 늘려가며 조금씩 도전중이다. 예전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만나는 ‘정상에서의 멋진 경관’이 등산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엔 정상에서 보는 풍경보다 ‘올라가는 과정’이 진짜 등산의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힘들 땐 잠시 멈춰 숨을 가슴 깊이 들이마시고, 땀에 젖은 옷을 시원하게 해주는 바람에 감사하고, 평소엔 그냥 지나치던 눈앞에 보이는 나뭇잎, 꽃잎도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그렇게 잠시 쉬고 있던 풍경을 생각하니 그림책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이 떠올랐다.

팽팽한 긴장의 끈이 느슨해지는 해질녘 하늘의 노오란 빛 표지를 넘기면 한 소녀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그림이 나타난다. 그림책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낯선 시선. 그 다음 장을 넘기면 그 소녀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신문을 보는 삼촌이 벤치에 편안히 누워 있다. 그리고 다음 장엔 삼촌 시선에서 보는 장면이 나타나는데, 마치 내가 따뜻한 햇살을 쬐며 나른하게 누워 있는 삼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소녀는 삼촌을 지나 이모, 아기, 이웃집 아저씨 등 마을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뭐 하냐고 물어본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정확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설명하지만, 설명과 달리 편하게 누워 게으름 피우고 있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세상이 나타난다.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책은 독자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나로서는 산에 오르며 잠깐의 게으름, 아니 휴식중에 느낀 고요함, 아름다움, 행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장을 넘기며 잠시의 게으름이 주는 달콤한 나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주엔 다시 산에 올라야겠다.

전부용(담작은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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