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헌수 이사장

2000년 6월 15일, 평양.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적인 6·15선언을 했다.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획기적인 대전환을 이뤘다. 남북의 왕래가 빈번해졌고, 북한은 우리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는 여러 가지 이유와 사건으로 다시 경색되었고, 지금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강원도는 남북으로 나뉜 유일한 지자체이다. 6·15선언을 즈음하여 (사)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헌수 이사장의 정세 인식과 전망을 듣는다.

사단법인 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이헌수 이사장

미국, 북한 적대시할 이유 줄어

남북관계는 선언적인 평화를 넘어서 실질적인 평화를 위해 다시 전진해야 한다. 2021년 하반기에는 남북관계가 평화의 관계로 다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 패권을 두고 격돌하고 있는 미·중 간 갈등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킬 계기가 될 수 있다. 2021년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본격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간 갈등 국면에서 남한과 북한의 선택은 모두 중요하다.

정세 변화에 따라 미국은 북한을 계속해서 적대시할 전략적 이유가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첫째,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며 빌미로 삼은 중국 견제를 위한 성주의 사드 배치를 통해 미국의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체계(MD)가 완성되었다. 이로써 북한을 적대시해야 할 한 가지 요인이 줄어든 것이다.

둘째, 중국의 인도양, 아프리카로 향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해양 진출이 미국의 해양 패권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면서 미국의 군사적 시선은 남중국해와 인도양으로 이동했다. 따라서 중국의 동아시아에서의 태평양 진출 봉쇄도 한반도보다는 대만과 남중국해에서의 봉쇄가 더 직접적으로 중요해졌다. 이는 북한을 적대시하는 전략적 가치를 줄어들게 했다.

셋째, 미·중 간 대결이 노골화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북한을 굳이 악마화하면서 중국 견제에 이용할 필요가 대폭 줄어들었다.

넷째, 장기적으로 중국의 제1, 2 도련선(島連線) 돌파가 현실화할 때, 북한을 중국과 긴밀한 관계로 놔두기보다는, 마치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처럼 북한을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이미 전략국가로 성장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미국에 비우호적인 중국, 러시아처럼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춘 지구상의 세 번째 국가로 등장했다. 북한은 이미 이라크, 리비아, 이란 등과 같은 지역국가가 아닌 전략국가로 성장했다. 군사적으로는 이제 미국이 북한을 일방적으로 압박하고 위협하기보다는 오히려 북의 대미 위협을 관리해야 할 국가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과의 적대시 정책을 곧바로 바꿀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아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여전히 유용한 카드다. 북한의 위협을 명분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간 동아시아 군사협력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미국으로서는 중요하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남한과의 군사적 협력을 미군의 통제 아래 두면서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와 남중국해 등으로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 한국과의 경제·기술협력도 중요

이러한 정세 아래서 한국 정부의 선택은 남·북·미 간의 미래관계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북·미 간의 대결이 쌍방 간 이롭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북미 간의 관계개선은 미국에게 현실적 위협이 되어 있는 군사대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중의 경쟁관계에서도 북한을 압박하여 중국 쪽으로 몰아넣기보다는 미국 쪽으로 당겨오는 것이 낫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국제사회와 미국과의 관계에서 위상이 높아진 국력을 배경으로 자주적인 입장에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도 좋을 상황에 있다. 

한반도의 군사전략적 가치 변화와 맞물려 미국은 남한과의 협력이 군사적 부문보다는 오히려 경제와 기술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파트너십이 더 중요해졌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자동차, 바이오 등 미국이 중국의 기술굴기를 막아 패권 도전을 막거나 늦추는 데 있어 한국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미·중 간 패권경쟁에서 군사적인 협력과 대결 관계에 휘말리지 않고, 경제와 기술 협력을 중심에 놓고 미·중과의 이해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남북관계를 군사적인 긴장관계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도 미국을 적대시할 이유 없어

게다가 북한도 미국을 적대시할 이유가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이 침략의 위협이 될 수 있어 잠재적인 적대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건으로 살펴보면, 남한이나 북한 모두 협력을 강화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일은 국제관계에서 모두에게 이롭고 선한 일이다. 남북 간 체제 대결 문제는 당장에 단일한 체제로의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 1민족 2국가 2체제를 유지하는 평화체제를 거쳐 1국가 2체제로 통일을 하고 나서 1민족 1국가로의 통일은 그 이후의 일이다.

평화체제 지향의 철저한 민족관 정립 우선되어야

지금은 두 체제가 공존하는 평화체제를 지향하는 철저한 민족관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국가관은 민족관의 하위개념이고, 남북의 단일한 국가관은 1국가 1체제로의 전환 시기에나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남북의 평화 프로세스가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 우리의 현재를 냉정하고 과학적으로 돌아볼 뿐 아니라 실천적인 무언가를 도모해야 한다고 이헌수 이사장은 제안한다.

이창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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