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시급한 문제임에 비해 잘 다뤄지지 않았지만 몇 년 사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중앙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강원도와 춘천시는 2040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P4G 녹색미래 정상회의를 개최하며 기후위기 대응 선도국을 자처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순차적으로 잘 진행되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숨기고 있다. 지금의 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꾸준히 탄소가 배출된 결과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살아 있는 우리 세대가 사는 동안 탄소 배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 에너지 소비 등의 지표가 1950년대 이후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지구 평균온도가 1.1℃ 올랐다고 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은 1950년대 이후에 올랐다. 더욱이 여러 연구에 의하면 전세계 소득과 자산 분포에 비례해 그 책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015년 옥스팜에서 조사한 소득 분위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상위 10% 소득계층이 소비 기반 배출량의 대략 50%를 차지한다. 이와 비교해 하위 50% 소득계층의 배출량은 다 합해도 대략 10%에 불과하다.

기후위기는 ‘불평등’ 위기다. 온실가스 배출 책임뿐 아니라 위기로 인한 피해마저 불평등하다. 폭염에도 목숨 걸고 일해야만 하는 노동자, 최장기간 장마로 평생 일군 터전을 잃은 농민, 고시원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해 카페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청년들. 이들 모두가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가장 적은 계층이다.

정작 책임을 더 느껴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할 뿐 아니라 위기조차 기회로 삼으려 한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인 포스코는 K-ESG 지표평가에서 A등급을 받는가 하면, 너도나도 친환경을 내세우며 으스대는 모습이 꼴사납다.

산업구조 및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도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로 영세자영업자,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보다 강하게 탄소배출을 줄이면 더 비극적인 일도 견뎌내야 한다.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어떤가? 아무도 폐쇄 시기를 알려주지 않아 언제 해고를 당할지 전전긍긍한다. 과연 이것이 정의인가?

기후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정확한 의미를 아는 대중이 얼마나 있나? 한국의 그린뉴딜은 왜 이토록 인기가 없을까? ‘시민’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기후위기 대응은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수십년간 위기를 만들어왔거나 동조했던 이들이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가장 오랫동안 큰 피해를 볼 10·20세대에게는 본인들이 살아갈 미래를 결정하는 데 어떠한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데 말이다.

문제를 당장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당사자가 빠진 대응은 기후 파시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민주적이고 계획적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가장 시급하게 고민해야 한다. 시민이 정보를 공유하고 실천을 계획하며 갈등을 조정해나갈 수 있도록 숙의와 민주주의 확대의 장을 넓혀야 한다. 전환의 과정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함께 가는 과정으로 기획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기후정의다. 

6월민주항쟁 34주년을 맞은 지금, 2021년의 청년이 바라는 ‘기후정의’는 아마도 1987년 6월 이한열이 열망했던 그 세상과도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하종(대학생기후행동 강원지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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