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김유정의 후손입니다. 외종손녀이지요. 여기는 친할머니댁이고요.

“김유정 동상 앞에서 그렇게 진지하게 묵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필자의 가벼운 말 건넴에 돌아온 작가의 첫 대답이었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이미연의 외침도 아니고…. 그녀가 그 유명한 ‘축복의 종’의 작가인지도 모르고, 또한 김유정의 후손인지 모르고 무식하게 말을 건넬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김유정문학촌에서 진행하는 시창작 수업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만나는 학우이고, 그 전엔 실레마을에 있는 필자의 작업실 마당에서 몇 번 스친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치도예가 유승현 작가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더 웨이’의 <축복의 종> 앞에 선 유승현 작가

낭만누리 전시실에서 ‘축복의 종’을 여러 번 봤어요. 다행히 작가님께서 공동 저작하신 《13월의 작업실》도 읽었네요. 김유정문학촌에 작가님의 작품이 설치된 연유도 김유정의 후손과 관련 있을까요?

2013년 낭만누리 전시실 개관기념 ‘봄봄을 노래하다’ 유족 초대전으로 춘천에서 처음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엔 ‘유정, 꽃으로 피다’展으로 지역작가인 이구하 서양화가와 협업으로 전시한 바 있고요, 춘천에선 Gallery 4F 등 몇 곳에서 더 전시를 했었습니다.

유승현 작가는 현재 서울에 살며 작업실은 경기도 하남(김유정 선생이 작고하신 옛 광주)에 있다. 우리는 ‘축복의 종’이 설치돼 있는 낭만누리 전시실과 카페 The Way로 자리를 옮겨가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노란 유약을 바른 종들이 바로 동백꽃을 연상시키고 있어요. 이렇게 각자의 공간을 점유하며 다른 높낮이로 매달려 있는 종들에게서 제게 우선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음악적인 율동감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집에 설치된 종나무는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종마다 작품 이름이 새겨졌더군요. 저와 앞으로의 관객을 위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유정할배의 발표된 글은 소설은 32편, 수필은 12편입니다. 문학나무를 설치하여 글의 제목, 발표 연도와 출판사를 적어서 소설나무와 수필나무로 표현했어요. 감사하게도 한글서예가 박무숙 작가와 나무공예가 이병희 작가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봄봄》, 《동백꽃》뿐만 아니라 김유정의 다른 작품도 함께 알리고자 하는 문학촌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김유정을 ‘유정할배’라고 부르는 이가 또 있을까.

“종이…. 소리가 나나요?” 궁금함을 참지 못한 질문에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터엉~~ 내가 흔들었는데 바람이 지나가는 듯하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기분도 든다. 소리를 들어야 완성되는 설치도예라니. 김유정문학촌과 카페 The Way를 찾는 관객이라면 울림도 들어보시라. ‘축복의 종’의 유래가 궁금했고 당연히 전통 도예를 하는 아버지(유 작가의 아버지는 한국왕실도자기의 유인근 작가다) 얘기가 나오리라 기대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아침마다 말씀해주셨어요. “너는 고귀하다. 세상의 빛이 되어라. 축복한다.” 세 문장이 어른이 된 지금도 깊이 남아 있어요. 우연히 인간으로 태어나 살다 보니 저도 상처를 주고, 또 받기도 하는데 관람하는 이들에게 축복의 메시지와 따스함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주제적으론 그렇지만 도자에 대한 영향은 당연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실은 저는 다섯살 때부터 피아노에서 노는 아이였어요. 전공까지 했으나 만나보지도 못한 베토벤과 쇼팽을 파먹는 일이 더 이상 가슴 뛰는 일이 아니더군요. 20대가 되면서 아버지의 작업실을 드나들게 되고 문하생들 사이에서 유약 실험을 해볼 기회를 얻었죠. 매체가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물성에 매료되고, 작업하는 시간이 길어지더니 어느덧 전업작가가 됐습니다.

<문학나무 : 소설>

아까 말씀하신 음악적 율동. 맞아요. 시간예술에서 공간예술로 이동한 것이지만 음악은 당연히 작품의 원천적인 영감이고 중요한 표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유정의 생가가 자신의 친할머니댁이라고 말하는 유승현 작가와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각인됐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들은 김유정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을 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 한 토막을 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의 할머니 김복달(아명 흥선)은 유정할배의 다섯째 누이예요. 당시 신여성으로서 유정처럼 동네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했답니다. 할머니는 유정할배의 글을 먼저 있고 평을 하기도 하고 새 글감을 주기도 했다더군요. 매형이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에 가서 유정의 원고를 보내고, 상금을 타면 유정은 누이와 조카들에게 선물을 돌렸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또 유정할배가 음악을 좋아해서 바이올린과 하모니카를 동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럴 땐 누이가 밤 서너 말을 삶아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폐결핵으로 병이 깊어진 유정할배를 전차에서 업고 오던 매형이 담배를 여러 갑 사주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김유정의 말년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후손의 가슴 속에 또렷이 자리 잡고 있다. 유정이 병과 싸워가며 열정의 집필을 불사르다 사망한 말년이 복원될 수 있다니. “저는 김유정의 후손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종소리처럼 다시 들린다. 설치도예가로서의 독자적인 위치를 점한 유승현에게 1900년대의 이야기를 자꾸 듣는 것이 슬며시 미안해져서 작가의 최근 근황과 계획을 들으며 인터뷰를 마치려 하는데 작가는 김유정을 떠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제가 김유정문학촌을 지속적으로 찾는 이유는 김유정과 김유정문학에 대한 애정 때문이고요, 이를 바탕으로 교육프로그램으로 개발시키고 싶은 바램이 있어요. 시창작 수업을 포함해서 문학촌의 모든 콘텐츠를 경험해보려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춘천에서 광주에 이르는 김유정에 대한 기획전시를 후반기에 하남시에서 진행하려 합니다. 개인적인 작업 관련해선 남해뮤지엄과 충무로초대전을 준비중입니다.

아버지 작업실에서의 유승현 작가

내년 초면 춘천의 예담갤러리에서도 유승현의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급한 분이면 김유정문학촌과 카페 The Way를 찾으면 된다. 국회로, 광주교육청으로 한국전기학회로 명성교회 박물관으로 찾아가면 그녀의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수도 있다. 가벼운 힘으로 줄기를 당겼다가 엄청나게 딸려나오는 넝쿨과 뿌리를 감당하지 못해서 스스로 분주한 인터뷰였다. 춘천을 ‘말 통하는 작은 섬’이라 부르는 그녀. 10여 년 전, 아버지와 함께 김유정추모제에 참석한 뒤로 거의 매달,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찾는다는 작가 유승현의 춘천방문기(춘천에서 만나는 사람, 찾는 공간, 예술비평에 관한 것들)를 이 지면에서 함께하지 못해 유감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춘천사람들》을 구독하는 하남 작업실의 독자고 우리는 당분간 매주 만날 테니 기회는 열려 있다고 믿는다.

조창호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