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춘중을 졸업한 뒤 춘고에 입학했다.

한창 사춘기라서 그럴까, 학교 공부보다는 딴짓에 몰두했다. 특히 소설책들을 본격적으로 읽었다. 《현대문학》 같은 순수문학책의 소설들은 물론이고 방인근이 지은 성인(?)소설도 많이 읽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교내 도서관에서 이상(李箱)의 소설 《날개》를 읽고는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매춘녀의 기둥서방으로 살아가는 사내를 주인공으로 하는 설정도 충격적이지만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실생활에 근거한 작품이라는 데서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충격적인 소설을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설프나마 실천에 옮겼다. 같은 반의 시를 쓰는 친구와 습작한 글들을 프린트로 밀어 《소연(小宴)》이란 동인지까지 냈다. 그 중 한 부를 ‘시인’이라 알려져 있는 ‘이덕성’ 국어 선생님한테 내가 직접 갖다 드렸다. 나는 1학년 학생이고 이덕성 선생님은 3학년 국어를 가르치므로 동인지를 갖다 드릴 이유가 딱히 없었는데도 그리했던 것이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놀라운 일이 며칠 뒤에 벌어졌다. 아버지가 집에서 나를 보더니 이러는 게 아닌가.

“이덕성 시인이 내게 그러더라. ‘병욱이가 처음 썼다는 소설치고는 괜찮게 썼다’고.”

아버지와 이덕성 시인은 수시로 술자리를 같이하는 잘 아는 사이였던 것이다(1967년 그즈음부터 아버지는 예총 일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덕성 선생님.

1·4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 왔다는 이북 분으로, 풍기는 풍모부터 시인이었다. 하이칼라 머리에 신사복을 즐겨 입었다. 작은 회중시계를 바지 주머니 속에 넣고 지내다가 가끔씩 꺼내어 보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그 회중시계는 허리춤의 혁대와 금줄로 이어져 있어서 분실 염려가 없었다.

3학년 국어담당 선생님이므로, 나는 “3학년이 되면 시인 선생님한테 국어를 배우겠구나” 하는 기대가 컸는데 정작 3학년이 되자 다른 학교로 전근 가버리시는 바람에 결국 교실에서 한 번도 뵙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이런 기억도 있다. 1학년 전체가 가을 소풍을 등선폭포 부근 강변으로 갔는데 어쩐 일인지 이덕성 선생님도 3학년인 자기 반 학생들을 가까운 장소로 데려온 것이다. 3학년 전체 소풍이 아닌, 반 소풍이라는 사실도 눈길을 끌었지만 더욱 눈길을 끈 것은 ‘스스럼없이 강변 모래밭에 엎드려서 반 학생들과 1대 1로 팔씨름을 요란 벅적지근하게 벌이던 모습’이었다.

졸업을 앞둔 자기 반 학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려는 시인 담임의 호탕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시인 이덕성

함경북도 청진(淸津) 출생. 홍익대학 문학과 졸업. 1952년 2인 시집 《조락(凋落)의 모닥불》을 내놓아 데뷔. 이후 춘천사범·춘천농고·춘천고·경성고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54년 시집 《호흡》을 발간했다. 제1회 강원도문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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