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태 (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작품을 소설이나 영화로 접한 독자가 많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어 학생들에게도 매우 친근한 작품이다.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대한민국의 아픈 현대사와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대사 한 마디 마디마다, 영상 한 장면 장면마다 숨을 죽이고 봐야 한다. 영화의 주무대는 1960년대의 교실이다. 언제라도 선을 넘으면 전면전이라도 벌일 태세였던 좁은 책상과 삐걱거리는 걸상, 빡빡머리로 빼곡 찬 교실, 학생들도 있을 곳이 모자란 데 덩그러니 교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연탄난로가 영화를 보는 마음을 더욱 어둡게 한다.

많게는 한 학급에 70명도 넘었던 그 많은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모두가 진저리치는 기억대로 교사의 몽둥이가 필요했다. 교사가 부재할 때는 엄석대와 같은 대리인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 대리인이 부재할 때는 대리자를 따르는 이들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고 고발하며 서서히 스스로 노예가 되어갔다. 세월이 흘러 학생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초등학교에서는 스티커라는 보상으로, 중·고등학교에서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경쟁으로 진화해갔다. 예전의 교실에서 가르침을 빙자한 폭력 난무의 이유가 교사들이 전부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자이거나 무지렁이여서 그랬을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보다 더 고귀한 인품과 원대한 이상을 품으셨던 분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많은 학생들을 다룰 수 없었던 교실환경과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교사 자질의 전부로 평가받던 숨막히던 학교 문화가 우리들의 학교를 그렇게 만들었다. 한 명 한 명 학생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학교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적절한 학교 규모와 학급당 학생 수가 꼭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시민 한 명 한 명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 학생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학년별로 등교일수를 조정하며 학교마다 묘안을 짜내기 바쁘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만약 코로나19에 감염이 된다면 교실에서 감염이 될 것이며 정말 중요한 것은 학교 전체의 규모가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교실에서의 밀집도, 즉 학급당 학생 수라는 것을. 강원도의 중학교 평균 학생 수는 22.5명이나 춘천시는 25.25명이다. 이웃 경기도 지역 중학교는 5천771학급(46.4%)이 30명이 넘는 과밀학급이다. OECD 상위 10개국의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 18.4명, 중등 19.5명이다. 한 학급에 15명인 과학고 학생들은 작년에 모두 정상 등교하여 학업을 이어나갔다고 한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대한민국 모든 학교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이 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교조에서는 6월 1일부터 학급당 학생 수 20명 상한 법제화 입법청원에 돌입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다. 국회 국민동의청원(https://petitions.assembly.go.kr/)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서 “학급당”을 검색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 간 교육격차를 줄이고 정서적 고립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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