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책’은 이미 다른 이가 본 책을 일컫는 우리끼리의 단어입니다. 

어떤 이의 서재는 그 사람만의 우주입니다. 서재 또는 서가에는 주인의 지적 편력, 취향, 세계관 등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세상의 어떠한 서재도 똑같지 않습니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책을 끔찍이 아끼는 이에게 책을 빌리는 일일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좋은 책은 대개 이러한 분들의 서가에 꽂혀 있습니다. 과거에 책을 읽기 위해서 책을 훔치는 것이 큰 도덕적 결함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필자도 학창시절 명동에 있던 ‘청구서적’과 선후배의 서가에서 몇 번 감행(?)했던 일입니다.

넉넉지 않았던 시절 ‘본책’방에 들어설 때의 마음은 온갖 신비한 문물을 지닌 신세계에 발을 딛는 모험가의 그것과 같았습니다. 불친절하게 혹은 주인장의 기호에 따라 쌓여 있는 ‘본책’의 서가를 뒤지다 보면 마치 성간유영자(星間遊泳者)가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딱히 원하는 책이 있어서 찾은 것은 아닐지라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본책’을 발견하면 큰 횡재라도 한 양 가슴이 부풀어오르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지기도 했습니다.

간서치(看書稚) 축에는 끼지도 못하지만 책과 멀리하지 않고 살아오면서 느낀 ‘본책’의 미덕 몇 가지가 있습니다. 

‘본책’의 첫째 미덕은 화장을 걷어낸 맨 얼굴이 주는 소박함입니다. 서점의 신간들이 상술과 시류의 화장으로 그 본질을 덮고 있다면 본책은 이를 걷어낸 알맹이가 주는 소박함과 묵직함이 있습니다.

두 번째 미덕은 비싸지 않다는 것입니다. 웬만한 책 한 권이 2만원을 오르내리며 서가에 내민 손을 주저하게 만들지만 ‘본책’은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혹은 주는 이의 호의로 부담없이 내 손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즐거움은 먼저 읽은 이와 유대감을 만들어준다는 점입니다. 행간에 쓰여진 메모나 밑줄은 먼저 읽은 이의 머릿속을 헤아릴 수 있게 해줍니다. 책갈피 깊숙이 숨어 있다 나타나는 메모는 ‘본책’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자 놀라움입니다.

마지막 즐거움은 부담없이 남에게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전 독자에 더해 내가 책에 남긴 흔적과 더불어서.

내 책에 배어 있는 지적 여행의 편력을 나누고 다른 이의 책에 남겨진 그 사람의 여정을 같이하고 싶은 몇몇이 어울려 ‘공유책방 본책’을 시작합니다.

서로의 책을 공유한다는 것은 나의 서재에 다른 이를 초대하고, 다른 이의 서재 초대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책이 주는 위로와 희망을 나누는 일입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의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주소 : 옥천길 25-1

하광윤(협동조합 공유책방 본책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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