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불 붙은 채 쌀가마니에 실려 온 신발

중앙신발백화점(옛 중앙고무)은 1960년 중앙시장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신발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도 한껏 멋스럽게 차려입고 중앙신발백화점을 지키는 함명사(81) 사장. 그가 중앙신발백화점의 창업주이다. 

스물두 살부터 남편과 함께 신발을 팔았다. 그때는 신발가게 이름이 다 ○○고무였다. 고무신이나 농화, 장화 등 고무로 만든 신발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중앙시장이 그랬듯 네 개의 기둥 사이에 천막을 치고 신발을 진열했다. 

2층에선 살림을 살았다. 스물다섯살에 첫 아이를 낳았고 시장에 불이 났다. 1966년 새 건물이 올라갔고 여전히 그곳에 살림을 차렸고 1남1녀를 길러냈다. 1995년까지 삼십년이 넘게 중앙시장은 그의 삶터였다. 

이곳은 중앙시장에서 제일 장사가 잘되는 신발가게였다. 처음에 손바닥만한 한 칸짜리 가게에서 장사를 시작해 지금의 네 칸까지 터를 넓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발이 쌀가마니에 실려 왔다. 신발에는 검불이며 진흙이 잔뜩 붙어왔다. 그걸 손질해 진열하다 보면 손가락이 다 까졌다. 손가락 10개에 모두 반창고를 붙이고 일했다. 

“나는 살아온 게 너무 고달파서 얘기하고 싶지도 않아. 그 옛날로 돌아가라면 절대로 안 돌아갈 거야. 그래도 가게가 크고 오래돼 대를 이어서 오는 손님이 많으니 보람있지. 20년 동안 미국서 살다 돌아와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어.”

지금 중앙시장에는 3개의 신발 가게가 있다. 영진신발과 평화고무가 중앙신발백화점과 함께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오래된 시장 단골들을 맞이하고 있다. 

미군과 양공주가 빼돌려 판 수입제품들

지금의 중앙시장 게이트 5번은 양키시장 자리였다. 이 부근은 모두 수입제품을 파는 노점상과 점포들로 빼곡했다. 양키시장의 물건은 죄다 밀수품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미군들로부터 빼돌린 물건이었다. 양공주도 한몫했다. 중간에서 유통하는 여자들이 물건을 시장에 뿌렸다. 미국산 커피가 가장 인기를 끌었고 사탕, 초콜릿, 신발, 약품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1986년 이후 수입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양키시장은 빛을 잃었다. 

지금은 선호상회, 보광상회 등 여섯 집만 남았다. 모두 50년이 넘은 이 가게들에서 부모님의 대를 이어 자식들이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미국산 제품뿐만 아니라 일본 수입제품도 판매한다. 

선호상회 조숙현 사장(65)은 “아버지가 하던 가게를 남한테 주기 싫어서 내가 맡게 됐어요. 여기에서는 좋다고 소문난 수입산을 싸게 살 수 있어요. 일본산 소화제, 미국산 프로폴리스, 시서스 같은 것이 인기 있죠.” 

중앙시장을 속속들이 살펴보면 비슷한 업종의 점포들이 어깨동무하듯이 줄 서 있다. 수십년 동안 서로 경쟁하면서도 미운 정, 고운 정 나눠온 이웃들이다. 주단, 신발, 중장년층 의류, 보석, 가방, 패션잡화, 떡, 순댓국, 생물, 생활잡화, 식재료상 등이 시장 건물 사이사이 마치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중앙시장에는 값싸고 질 좋은 제품과 정이 골목길을 따라 느리게 흘러다닌다. (계속)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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