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 (춘천워커즈협동조합 사무국장)

출근을 하지 않는 아침에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신문을 펼친다. 마침 내가 보는 신문은 금요일에 책 소개 면을 따로 내고 있다. 요즘은 《지지 않기 위해 쓴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같은 저임금노동의 현실과 그로 인한 불평등에 관한 책에 눈길이 간다.

내가 일을 하며 겪는 어려움이나 문득 생기는 의문의 답을 거기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 때문인가 보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오면 저녁밥을 챙기기도 귀찮을 때가 많다. 다음날 일을 하려면 저녁 약속이나 다른 일정을 만드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고 일터에 도착할 때까지 최소한 한 시간은 걸리는 거 같다. 이러다 보면 일상의 대부분이 일을 위한 시간이 되면서 일이 시간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이제껏 이런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거 같다. ‘근면’, ‘성실’이 급훈이나 가훈이던 때도 있었다. 혹은 여전히 그런지도 모르겠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 나는 젊지도 않고 무리했다 싶으면 어깨와 허리 통증에 시달린다.

누구나 일을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식사나 차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을 텐데 왜 일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을까. 여러 이유 중 나는 ‘저임금노동’에 주목한다.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내가 하고 있는 조리를 비롯해 배송, 요양보호, 간병, 대형마트 노동, 가스계량기 검침, 방문서비스, 경비일 등은 우리 일상이 잘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것들임에도 대표적인 저임금노동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임에도 이렇게나 가치가 없는 것인지. 노동의 가치를 새로운 기준으로 매기라고 누군가에게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에서는 학교급식조리사, 요양보호사, 마트 판매 노동자, 가스계량기 검침이나 누출검지 업무자 등을 ‘아줌마’만 일하는 직업이라 한다. 거의 여성 중장년층이며, 대체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일은 직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 중 집에 가서 쉰다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집에는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진을 다 빼고 나면 가정생활이 되지 않는다며 일을 그만두는 동료를 이해한다. 가족들도 그만두길 바란단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나 중년의 남편도 엄마나 아내의 돌봄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나도 일을(돈이 되든 아니든) 하는 내내 들었던 말이다. 일하며 가정을 돌보려면 자기 살을 깎아야 하는 현실은 여전한 것인지.

성인이 된 아이들은 상급 학교에 가면서 각자 나가 살고, 혼자 몸만 돌보면 되는 나도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지는 날이 잦은데 오죽할까 싶다. 몸 바쳐 일해도 내 한 몸 건사할 돈을 벌기 힘들다면 그건 능력이 없는 내 탓일까. 전문적인 일이 아니라서, 무쇠 같은 몸이 아니라서 당연한 일일까.

누구나 지치지 않을 만큼 일하고도 생활이 되는 세상은 말이 안 되는 꿈일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다른 얘기가 될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잔인한 세상이라니,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들었나. 뼈 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급진적인 것인지.

내가 바라는 것은 소박하다. 음식을 만드는 내 일이 존중받고, 퇴근해서는 저녁을 잘 챙기고, 요가 수련을 할 여력이 남아 있는 매일을 보내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통장에 적자가 쌓이지 않는 삶이면 좋겠다. 역시, 과격한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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