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림 (춘천 퇴계초등학교 교사)

최근 국어교육과정에 ‘온작품읽기’라는 활동이 추가되었다. 교과서에 제시되는 짧은 이야기에서 단편적 정보를 확인하는 것보다 긴 호흡으로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어낼 수 있는 활동이 아이들의 읽기 역량을 높이고 다양한 수업활동을 하는데 더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이 병행되면서 온전하게 작품에 빠지는 온작품읽기 활동을 하기가 다소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내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활동은 ‘오디오북’처럼 책을 읽어서 올려주고 아이들이 그 내용을 듣는 활동이었다.

올해 읽어준 책은 《몽실언니》였다. 한국전쟁 전후 시대를 살아가는 몽실이는 삶을 통해서 당시 시대상을 그려보고, 몽실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 삶을 대하는 태도를 학생들이 배우기를 바랐다. 물론 아이들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퀴즈도 항상 풀어야 한다. 교실에서 함께 읽을 때는 수업시간에 만들어진 분위기와 몰입감이 이야기에 폭 빠지게 해서 단순 퀴즈 풀이를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원격수업이라는 혼자 학습하는 상황에서는 반강제라도 활동에 참여하게 하려면 (방식이 맘에 안 들어도) 퀴즈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퀴즈에 답을 쓰기 위해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몽실이의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교사의 소박한 바람이지만.

6학년 사회교과에는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와 이후 경제성장에 대한 과정도 포함되어있다. 몽실이의 자취를 좇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몽실이는 존재하지 않지만, 몽실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 지점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는 않는 세계를 짓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든 사람을 대변해준다. 《몽실언니》 책에 나온 몽실이는 아무 곳에도 없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어느 곳에나 있다. 그리고 몽실이 이야기를 통해서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은 그들이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책 자체가 가지는 유익함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가진 힘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드러내고, 새로운 세계를 짓는 힘.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에는 없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은 스스로 세상을 구축할 수 있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만나는 매력은 이 지점이 아닌가 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활자에 피로한 눈을 사용할 수 없다면, 잠시 눈을 감고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을 추천한다. 듣다가 잠에 들더라도, 어디로든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수 있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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