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차별금지법 인가
이주민 지음/ 스리체어스 펴냄 9,800원

“흑인을 향한 전진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백인 인종주의자가 아니라 백인 온건주의자다. 그들은 정의가 있는 적극적인 평화보다는 갈등이 없는 소극적 평화만을 원한다. (중략)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얄팍한 이해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완전한 몰이해보다 나를 더 지치게 한다. 소극적 찬성은 적극적 반대보다 더 납득하기 어렵다.” - 마틴 루터킹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50대 기혼남(男)인 나는, 장애를 갖고 있지 않고, 이성애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통계적인 의미에서 내 삶은 언제나 다수였다. 소수에 대한 연민(憐憫)의 감정 정도가 타인에 대한 내 행위의 준거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불편할 일은 없으니까.(없을 줄 알았으니까.) 

차별은 대기오염과 같다. 오염이 심해지면 기저 질환자 먼저 쓰러지지만, 계속 방치하면 모두 숨을 쉴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 강자로서의 특성과 약자로서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교차성), 차별과 혐오는 사회 전체에 피해를 주는 보편적 현상이면서, 그 자체로 서로 연결되고 강화된다.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대로 ‘ 가장 약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 가가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 1항과 근로 조건 차별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제6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 기존에 존재하는 개별법과 강제성이 없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의 구제보다 구체적이고, 강한 효력을 갖는 법률 제정안이다. ‘고용, 경제행위, 교육, 정부서비스’라는 구체적인 차별금지 범위를 명시하였으며, ‘성별, 장애, 나이, 출신 국가,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후 시정명령을 불복할 경우 3천만원 이하의 강제 이행금, 민사상 배상 책임 시에 2배에서 5배 이하의 징벌적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적인 대화에서 오가는 표현과 개인의 신앙, 양심, 표현 등 사적 영역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2013년 59.8%의 찬성이었던 차별금지법 국민 여론조사는 2020년 88.5%로 조사되었다. 산술적으로 보자면 사회적 합의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과대 표집되는 강한 관심의 소수가 무관심한 다수를 규제한다는 조지 스티글러의 규제포획 이론에 빌려 말하자면 개신교 일부 강성목사들의 눈치를 보는 국민의 힘의 ‘사회적 논의 부족’ 프레임은 그들 스스로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이라 자화자찬한 젊은 당대표의 앞길이 꽃길만이 아닐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류재량(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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