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DJ의 역사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음악을 전문적으로 소개하고 방송하는 전문 DJ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KBS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노래 제목과 음악 내용을 소개하는 DJ 프로그램이 있긴 했지만, 미리 써준 원고를 아나운서들이 낭독하는 형태에 불과했다.

한국 최초 DJ 최동욱

뮤직홀 시대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서울과 부산을 필두로 대구 등 대도시에 뮤직홀(Music Hall) 붐 시대가 열렸다. 극장식 의자 배열에 전면에는 소형무대를 설치하고 대형스피커를 배치하는 형태였다.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티켓을 구매해서 입장하고 1인용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듣는 공간이었다. 업주가 고용한 플레이어(Player)가 코멘트 없이 레코드를 틀어주는 게 전부였는데, 간혹 흑판에 곡목을 적어 게시하기도 했다.

1955년 무렵에는 SP(Standard Play, 78회전)에서 LP(Long Play, 33과1/3회전)로 전환하는 시기여서 LP를 트는 경우에는 플레이 박스(Play Box) 유리창에 레코드 재킷을 진열하기도 했다. 이 시기까지도 DJ나 DJ 박스란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클래식 전문 음악감상실로는 인사동의 ‘르네상스’와 ‘무아’(종로1가에 있던 ‘무아’와 다른 공간)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DJ 등장

1960년 봄 학적보유병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고려대학교 3년생 최동욱이 종로 2가의 뮤직홀 ‘디쉐네(Die Shone)’에 자주 드나들던 중 이호범(작고, 별명 후라이)의 권유로 디스크자키 시도를 기획하고 업주의 승낙을 받아 방송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뮤직홀 DJ의 효시이다. 6개월 동안 ‘디쉐네’의 DJ로 꽤 화제가 되었던 최동욱은 이듬해인 ‘61년 봄 화신백화점 3층에 새로 개관한 고급 뮤직홀 ’메트로‘에 지배인의 초치(招致)로 스카우트 되어 자리를 옮겼다. 그때 보조 DJ로 서울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흥숙(후에 MBC 아나운서)과 팀을 이루었고, 정흥숙은 뮤직홀 최초의 여성 DJ가 된 셈이다.

최동욱이 ‘메트로’로 자리를 옮긴 뒤 ‘디쉐네’는 ‘라스카라’에서 일하던 이종환을 초치해갔다. ‘메트로’에서 본격 활동 중이던 DJ 최동욱은 충무로의 뮤직홀 ‘카네기’, 종로 2가 YMCA 뒤로 이전한 ‘쎄시봉’을 거친 뒤 또다시 ‘디쉐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디쉐네’에 컴백했다. 최동욱은 스카우트 되어서 갔던 모든 뮤직홀에서 턴테이블을 통해 음악을 틀고 마이크를 사용해 곡목을 소개하면서 뮤직홀 최초로 ‘디스크자키’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1961년부터 뮤직홀 DJ로 일하면서 KBS 라디오의 주간 팝송프로그램 ‘금주의 히트퍼레이드’의 구성작가 겸 진행자로 발탁되었다가, 1963년 동아방송이 개국 되기 전 이미 개국 요원으로 1962년 가을부터 동아일보에 입사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종로 2가 천도제약 뒤 2층에 새로운 뮤직홀 ‘뉴월드’(대표 김태관, 매니저 송종근)가 개관하면서 최동욱을 음악실장으로 앉히고 그의 산하에 이종환, 이해석(이석), 김준, 정흥숙 등을 기용하였다. (계속)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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